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정육 동양미술 에세이 1
조정육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그림에는 어느 한 순간이 포착되어 잡혀 있다. 잡혀 있다고 해야 한다. 그림 속에 있는 그 순간은 영원히 그림 속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그 갇힘 속에서도 끊임없이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갇혀 있으면서도 갇혀 있지 않음. 그것이 그림의 숙명이다.

 

그림은 갇혀 있기만 해서는 그림으로서의 존재를 완성할 수 없다. 갇힘으로서 갇힘을 벗어나는 순간 그림은 그림으로서 존재한다. 그것이 그림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된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은 대화라고 한다. 그림과 사람이 대화를 하는 순간, 사람은 그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순간에 사람의 삶은 더욱 풍요로와진다. 이것이 그림이 지닌 갇혀 있지 않음이다. 언제나 그림은 제자리에 있는 듯하지만, 결코 제 자리에 있지 않는다. 그림은 늘 같은 모습을 지닌 듯하지만, 같은 모습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 때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그림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르게 말을 걸어온다. 그림은 갇혀 있으면서도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자신을 가꾸고 있나 보다.

 

그림 속에서 어떤 이야기를 읽어내는 순간, 그림 속에서 삶을 발견해내는 순간, 그림은 단순한 그림으로 존재하지 않고 내 삶으로 존재하게 된다. 이런 그림을 만나는 순간, 꽃봉오리가 활짝 터지듯이 삶이 만개하게 된다.

 

지은이의 삶과 그림이 대화를 하고 있다. 이런 대화를 엿들으며 나 또한 그림과 대화를 한다. 그리고 내 삶과 대화를 한다.

 

그림 속에서 가격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 삶을 읽어내고 삶을 발견한다. 그러한 그림 읽기, 아니 그림과 함께 살아가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문화예술교육이 강조되고 있다. 이 중에 학교에서는 체육을 가장 강조하고 있지만, 체육만큼이나 음악, 미술교육이 강조되어야 하고, 또한 다른 문화(철학이라든지, 고전 읽기라든지 하는 인문학이라는 분야)도 강조되어야 한다.

 

한 쪽만 강조해서는 제대로 된 삶을 영휘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작을 중심으로, 또는 감상을 중심으로, 기법을 중심으로 미술을 가르치는 방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미술을 배우는 이유 역시 자신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이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책에서처럼 그림을 통해, 미술을 통해 자신의 삶의 한 귀퉁이에 숨어 있던 그 어떤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그림을 보며 자신의 삶을 발견해내게 하는 교육, 또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삶과 대화를 하는 교육, 그런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에서 스윽 지나치는 미술관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불시에 자신의 삶 속으로 그림이 들어오게 되는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미술교육.

 

세계적인 화가들의 그림을 보여주고 작가와 기법을 외우게 하기 보다는, 이런 그림에 관한 에세이들을 읽히면 자연스레 그림과 대화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기에는 우선 여유가 있어야겠지.

 

대화란 여유에서 나올테니, 여유가 없을 땐 일방통행만이 이루어질테니.

 

주로 우리나라 그림들이 많고, 가끔 중국과 일본 그림이 나온다. 하여 동양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고, 이런 그림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끌어내는 모습을 읽는 재미도 있는. 하여 이런 글을 읽는 여유를 만끽하는 그런 시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