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코 앞에 둔 이틀 전.
친구들을 만나기로 하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교통수단은 전철이다.
전철 안에서 최소한 30분 정도를 보내야 하는데...
무엇을 하면서 갈까 생각하다, 시집 한 권을 들고 가기로 결정.
누구 시집?
잊혀져 서가에 꽂혀 잠자고 있는 시집 중 하나를 고르려고 맘 먹었는데...
대선이 코 앞인데,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는데... 우리에게 다시 봄이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
박인환이 떠올랐다.
그의 시 하면 '우울'이 먼저 생각나는데...
그래, 우울이지, 그러나 단지 우울만이 아니지. 왜 우울하겠어.
희망을 생각하기에 환희를 경험했기에 우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박인환...
교과서에서 배운 시 달랑 하나 "목마와 숙녀"
그 알 수 없는 우울함이 정서를 자극했던 기억.
또 하나, 노래로 더 알려진 "세월이 가면"
요즘 "나가수"로 더 알려진, 자신의 생각을 가리지 않고 잘 표현하고 있는, 이은미가 리메이크 해서 부른 노래가 마음에 와닿았는데...
다른 시들은 아는 게 있던가? 했더니... 분명 예전에 읽었음에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이 참에 읽자...다는 못 읽더라도 오며가며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또 마침 주머니에도 딱 들어갈 문고판 시집이 있으니...
서문에 쓰인 김규동(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시인의 말처럼 그가 좀더 오래 살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대선.
드디어 다시 한 번 그의 시들을 다 읽었다.
이제는 "우울"을 넘어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환희"를 우리가 경험하는 날로 오늘이 기억됐으면 하는데...
그가 "구름"이란 시에서 말했듯이 지금 우리는 이런 상태가 아닐런지...
어린 생각이 부서진 하늘에 / 어머니구름 작은 구름들이 / 사나운 바람을 벗어난다.
밤비는 / 구름의 층계를 뛰어내려 / 우리에게 봄을 알려 주고 / 모든 것이 생명을 찾았을 때
달빛은 구름 사이로 / 지상의 행복을 빌어 주었다. / 새벽 문을 여니 / 안개보다 따스한 호흡으로
나를 안아 주던 구름이여 / 시간은 흘러가 / 네 모습은 또다시 하늘에 / 어느 곳에서도 바라볼 수 있는 / 우리의 전형 / 서로 손 잡고 모이면 / 크게 한 몸 되어 / 산다는 괴로움으로 흘러가는 구름
그러나 자유 속에서 / 아름다운 석양 옆에서 / 헤매는 것이 / 얼마나 좋으니
박인환시집, 범우문고 13 146-147쪽 '구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