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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박경리 작가 하면 토지가 먼저 떠오른다.
60년대에 시작하여 90년대에 완성된 소설. 처음에 장장 16권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여지는 소설. 우리나라 소설계에 우뚝 선 작품이다.
그리고 우리는 박경리 작가에게 '여류'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여자 작가가 많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여자 작가들에게 어떤 특수성을 부여하는지 '여류'라는 말을 붙였는데... 어느 순간 박경리 작가에게는 이 '여류'라는 말이 붙지 않았다.
작가면 작가지 작가를 남녀의 성으로 구분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박경리 작가에게 '여류'라는 딱지(?)를 붙이기 힘들어서이기도 했으리라.
요즘은 '여류'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바람직한 일이다.
박경리 작가가 시를 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냥 소설만 쓴 줄 알고 있었는데... 시집도 세 권 이상 내었다니...
시를 썼다는 사실을 박완서의 글을 읽고 알게 되었는데... 궁금증이 생겼다. 소설로 유명해진 작가가 어떤 시를 썼을까? 어떤 시집을 읽어야 하나?
맨 마지막 시집을 읽기로 하다. 박경리 유고 시집. 이 시집에는 박경리의 개인사가 잘 드러나고 있기도 하니... 인간 박경리를 알 겸 시도 읽을 겸.
시가 일사천리로 읽힌다. 노대가답게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가슴 속에 남아 있던 말들을 그냥 쏟아내었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읽는데 전혀 무리가 없고, 또한 그 말들이 수수하게, 순수하게, 직설적으로 마음에 꽂힌다.
아, 이런 삶을 사셨구나!
아,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
아, 이런 생각을 하고 계셨구나!
박경리 개인의 가족사, 삶을 쓴 시들도 마음에 와닿고, 또 삶에 대한 통찰이 마음에 와닿는다.
지금 세태와 관련지어 이 시를 보자.
시인의 통찰이 마음에 와닿으리라.
사람의 됨됨이
가난하다고 /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 부자라고 /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 그것은 /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 삶이 풍성해지고 / 인색함으로 하여 /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 생명들은 어쨌거나 /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 심성이 후하여 / 넉넉하고 생기에 찬 /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 인색한 사람은 /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 후한 사람은 /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마로니에북스, 초판 9쇄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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