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 시인 김남주 헌정시집
백무산 외 57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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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라고도 하고 시인이라고도 한다.

본인은 전사가 되고 싶어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김남주는 시인으로 남아있다.

 

남민전 사건이든 뭐든 그렇게 기억하기보다는 김남주는 우리의 현실을, 우리가 살아야 할 현실을 처절하게 노래한 시인이라고 기억된다.

 

그가 그리운 지금은, 아직도 그가 노래했던 현실이 과거의 현실이 되지 못하고 우리의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시도 많이 어려워지고 민중들과도 멀어져서 이제는 시인의 책상에서 또는 시인들끼리 아니면 학문의 연구거리로, 그렇지 않다면 아직 시를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지만, 아직도 민중들 곁에 남아 있는 시인들이, 민중들의 가슴에 남아 있는 시들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시인들에게서 김남주를 본다.

 

김남주 서거 10주년도, 20주년도 아닌 올해, 김남주 헌정시집을 발간한 이유는 아마도 김남주가 꿈꾸었던 세상이 아직도 요원하고, 그가 노래로 타파하고자 했던 현실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는 인식 때문이리라. 그래서 김남주가 그리워졌고, 김남주를 불러냄으로써 우리도 그처럼 현실을 바꾸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리라.

 

김남주 헌정시집답게 김남주의 시 구절에서, 김남주의 시 제목에서, 김남주의 생가에서, 또 김남주와 얽힌 이야기에서 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에 김남주의 시정신을 이어받아 쓴 시까지.

 

아직도 김남주의 시가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지만, 그렇다고 현실을 비껴갈 수는 없는 노릇.

 

오히려 김남주를 생각한다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도 혼자만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고 외쳤던 김남주, 그의 외침이 공허해지지 않도록 또 '삼팔선은 삼팔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외침처럼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삼팔선을 걷어내고,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그러한 모습을 보여야 하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현실.

 

김남주의 시에서 아직도 발견하면 안되지 않겠는가.

 

오히려 다음에 나올 김남주 헌정시집은 희망을 노래하는, 민중이 모두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현실을 담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이런 내용의 시가 김남주 헌정시집의 첫머리를 장식하지는 말게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게 우리가 할 일인데, 우리가 하지 못해서 이번 헌정시집의 첫 번째 시는 마음이 아프다.

 

아직도 이러한 현실이라는 것이.

 

푸어

-공광규

 

푸어라는 어종이 인간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워크 푸어, 하우스푸어......

 

어류학자가 붙인 이름은 아니다

자본이 던진 낚시 바늘을 깊숙이 삼킨 어종이다

 

버스통이 담겨 통조림으로 팔려 가기도 하고

지하철통에 굴비로 엮여 실려 가기도 한다

 

좀 살찌고 때깔이 좋은 푸어는

한두 마리씩 승용차통에 담겨 특판 되기도 한다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삶이보이는창, 2012 초판 1쇄 15쪽

공광규 '푸어'  전문

 

이 시를 보자.

 

희망은 있다.

 

우리는 함께 하고 있음에.

 

이 감자를 보라

-정끝별

 

초여름 첫감자들 세상 봤다

씨 된 몸에서 푸른 두 귀가 불끈, 뿔났다

끙끙 앓는 안간힘으로 저를 낳고 저를 낳더니

벼랑의 밭이랑에서 딸림화음을 이루며 줄줄이

시민텃밭 참여자들 맨손바닥에 들려 나왔다

우락부락 열에 열렬한 야생 것들

 

굵고 실한 것들부터 박스에 올라타

잿더미 재건마을까지 달려갈 생존 감자

하늘독방 타워크레인까지 올라갈 희망 감자

청정 제주 강정까지 내려갈 지킴 감자

우리 집 식탁에 와서는 지지 감자

이웃집 문 앞에선 연대 감자 되겠다

 

남한강이 북한강이랑 만나는 두물머리

빼앗긴 텃밭에서 불법으로 키운

올여름 저 첫감자는 불복중 햇감자

지난겨울 배추는 4대강 포기배추

곧 거둬들일 가을 쌀은 버텨 쌀

헛삽질들 멈춰야 참삽질 허가되겠다

 

순순한 나도 감자 뜨거운 너도 감자

두물머리 비늘 햇살이 키운 배후 감자

흙 묻은 맨발로 딛고 선 바닥 감자

싹이 났다 잎이 났다 주먹 감자

지금은 늦감자를 수확할 때

이제 곧 감자를 먹게 될 것이다

 

"어디에 있는가, 나의 날개, 나의 노래는", 삶이보이는창, 2012 초판 1쇄 47쪽

정끝별, '이 감자를 보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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