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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집
정경섭 지음 / 레디앙 / 2012년 8월
평점 :
공간이 장소가 되는 곳.
그냥 스쳐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삶이 녹아 있는 곳.
그런 곳에서의 만남은 형식적인 만남으로 끝나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자연스레 지니게 된다.
결국 만남을 통해 따로 가되 함께 갈 수 있고, 함께 가되 따로 갈 수 있는 협동과 연대성이 발현되는 장소, 그러한 장소가 필요하다.
특히 풀뿌리들에게는.
풀뿌리들이 지니고 있는 큰 장점이 서로 잃을 것이 별로 없다는 것, 그래서 함께 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것.
서로의 힘듦을 이해할 수 있는 마음 바탕이 있다는 것, 경험이 비슷하다는 것. 그래서 그들은 신경림 시인의 시구절처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고 할 수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
이것이 바로 민중이 지니고 있는 힘이다.
그러한 민중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장소로서 '민중의 집'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엔 지금 세 군데에 있다고 하던데...(책의 주에 보니까 마포, 구로, 중랑에 있다고 한다. 382쪽 후주 21)
이 민중의 집은 민중들이 서로 소통하고 어울리는 장소로서의 기능을 한다고 하는데... 민중들이 함께 어울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와 시민단체와 인권단체와 환경단체와 그밖의 지역에 자리잡은 단체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함께 어울리는 공간, 이 곳이 바로 '민중의 집'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마포 민중의 집을 운영하며, 세계 곳곳에서 민중의 집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을 방문한다.
이 책은 그 방문의 기록이다.
이탈리아와 스웨덴은 지금도 민중의 집이 잘 운영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스페인의 경우에는 민중의 집이 거의 사라졌다고 하고...역사가 100년이 넘은 민중의 집이 지역에서 민중들의 삶을 좀더 풍요롭게 만들고 있음을 두 나라의 사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정당과 노조와 시민단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음을, 정당인도, 노조원도, 시민단체 회원들도 자신의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바로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사실. 이들을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장소로서 '민중의 집'이 존재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겐 유럽의 이런 나라들과 같은 역사는 없지만, 비슷하게 함께 어울리는 장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급속한 근대화로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지만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의 집'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하여, 지금 우리에겐 이런 민중의 집이 필요하다.
각 단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만 움직이고 있는 현상태에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더욱 이러한 민중의 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책이다.
사회의 변혁이 위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함께 이뤄나가는 것이라면 민중의 집은 반드시 필요한, 우리가 먼저 만들어가야 할 우리들의 장소가 된다.
즉 사회변혁의 기점이 바로 민중의 집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