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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
에릭 홉스봄 지음, 이경일 옮김 / 까치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철학자는 이제까지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문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다"(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이 책 354쪽에서 재인용)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마르크스가 유행했었다. 사회학은 물론이고, 철학에서도, 그리고 경제학에서도... 이런 학문적인 분야말고도 사회운동 분야에서 마르크스는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되어가는 듯했고, 그 당시 많은 젊은이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곧 마르크시즘이 쇠퇴할 줄을 모른채.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서 사회주의권이 몰락했다. 말 그대로 몰락이다. 자본주의에 필적한 만한 사회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르크시즘은 이제는 한물 간 사상이라고 치부했다. 여기에 사회민주주의라는 개량주의도 한몫했다.
이제는 혁명의 시대는 물건너 갔다. 오직 개량만이 살 길이었다. 사회주의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다) 시대에 뒤떨어진, 시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급속히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회한에 젖거나, 아니면 현실에 안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세계를 바꿀 힘을 잃었다. 아니, 힘이 아니라 의지를 잃었다.
이제 마르크스는 도서관의 한 구석으로 물러나 버렸다.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사람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서울대에 있었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의 자리도 사라져갔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마르크스는 사라지는 이름이었다. 사라지는 학문이었다. 사라지는 실천이었다.
하다못해 진보정당에서도 노동계급의 이익을 내세우지 않는다. 노동계급이라는 마르크시즘을 지탱하던 계급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는지, 당이름에서 노동을 빼버렸다. 그리고 그들 정당의 주요 구성원들은 노동계급과는 거리가 있는 지식인들, 또는 시민단체 구성원들로 채워졌다.
노동은 조직화를 잃고, 힘을 잃고 그냥 파편화된 개인으로, 시민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홉스봄이 안타까워했듯이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갔고,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기만 했다.
그러나, 노학자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2008년 이후, "다시 한 번 마르크스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왔다(이 책 429쪽)"고 한다.
아직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만 한다고 홉스봄은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 책에서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관철하기 위하여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개관하고 있다. 각자 따로 쓰여진 글들이지만 홉스봄 자신이 그 글들을 마르크스주의의 탄생부터 발전, 쇠퇴를 각 시기별로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50여년에 걸쳐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반세기동안 홉스봄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한 이 사상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적어진 지금,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이 책은 결코 쉽지는 않지만, 한 눈에 마르크스주의를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마르크스-엥겔스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그람시도 다루고 있으니...
그람시의 헤게모니라는 개념과 지식인에 대한 논의는 지금 이 시대에도 얼마나 필요한지. 게다가 그가 말했더 진지전이라는 개념과 또 수동혁명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정치철학을 확립한 사람으로 왜 홉스봄이 그를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을테고, 또한 지금 정치현실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론을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르크스주의의 탄생부터 발전, 그리고 쇠퇴... 하지만 다시 마르크스를 생각해야 한다는 끝부분의 말까지.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의 테제에서 했던 말, 지금 우리나라 지식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