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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의지의 스타일
수잔 손택 지음, 이병용.안재연 옮김 / 현대미학사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총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문학에 관한 글이고, 2부는 영화, 연극에 관한 글, 3부는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글이다.
아마도 읽기에 가장 편한 글은 3부일터이다.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3부는 비록 1960년대의 상황에서 쓰여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근현대사와 관련이 있지 않은가. 그 당시 미국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와 베트남에 대해서 손택이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펼쳐가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베트남, 즉 하노이에서라는 글은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있으니, 읽으며서 여러 상황이 겹쳐서 떠오른다. 그 때 손택은 베트남에 대해 어떤 거리를 지니고 있었으나, 그 거리를 없애면서 베트남을 이해하는 모습을 글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벌써 50년도 더 지난 일이고, 이후는 베트남이 미국에 승리를 하고 끝났지만, 지금은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베트남 역시 휩쓸리고 있으니, 지금에서 그 때의 베트남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을 파악하면서 읽으면 나름 재이 있다.
2부는 상당히 어렵다. 사실, 영화와 연극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논한 첫번째 글도 그리 쉽지는 않지만, 베르히만과 고다르를 다룬 글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은 1960년대까지(즉 이 글이 쓰인 시대) 활약한 영화감독이고, 지금 우리에게 이들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너무도 멀어서 이들의 작품은 영화를 전공하는 사람들이나 볼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이들의 작품이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손택이 그러한 작품들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해주고 있다는 사실만을 기억하면서 읽어야 했다. 손택이 이들의 영화를 보는 눈, 어쩌면 그것은 지금 우리 시대에서 김기덕이나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눈과 비슷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김기덕과 홍상수의 작품이 대중성에서는 멀어졌으나 작품성에서는 인정받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우리나라에서보다는 외국에서. 그래서 이들의 영화를 읽는 방법, 보는 눈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손택이 베르히만이나 고다르의 영화를 분석하는 방법에서 힌트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뭐니뭐니 해도 다방면에 걸친 손택의 지적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1부가 문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아니 꼭 문학이라고 하기보다는 예술과 관련된 내용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의 첫글은 침묵에 관해서인데, 문학 작품이 수다스럽기보다는 침묵할 때 더 많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 그렇지 않은가. 문학이 직설적으로 무언가를 전달해준다면 그 감동은 일시적이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문학이 무언가에 침묵하고 있는데, 그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면 감동은 지속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다. 하여 문학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고, 두번째 글 포르노그래피 문학에 대해서는 읽으면서 자꾸 우리나라 마광수 교수를 생각하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60년대에 이미 이런 글이 나왔는데 우리나라 검열관들(?)은 이 손택의 글을 읽었을까? 읽었다면 마광수 교수의 작품을(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즐거운 사라'만이 기억에 남았다) 외설이라고 출판금지 시키지는 않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단지 작품의 출판금지만이 아니라 작가도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인가 하는 문제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관여를 하는가, 또 어떤 예술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핀다면 단지 성적인 묘사가 많다고 하여 외설이라고 규정짓지는 못하겠단 생각이 든다.
지금도 영화나 문학 또는 음악 분야에서 검열관으로 활약하는 분들, 손택의 이 50년쯤 된 글을 읽어보라. 어떻게 작품을 대해야 하는지 알게 될테니...
손택과 같은 비평가가 우리나라에도 많다. 그들의 글도 많다. 그럼에도 손택의 글을 읽는 이유는 거리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의 글을 읽을 때는 이 거리가 잘 유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택의 글은 거리를 유지하고, 나를 생각하면서 무언가를 더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그 점이 좋다. 그래서 자꾸 손택의 글을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