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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춤추게 하라 - 당신과 내가 함께 바꿔야 할 교육 이야기
우치다 타츠루 지음, 박동섭 옮김 / 민들레 / 2012년 8월
평점 :
"거리의 교육론"이 원래 제목이다. 참 잘 지은 제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리"라면 닫혀 있는 공간이 아니고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던가. 또한 거리는 이곳과 저곳을 잇는 곳이자, 한 곳에 멈춰 서 있는 공간이 아니라 어디론가 가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거리는 이곳과 저곳을 잇는 공간이자, 지금과 그때, 또 앞으로를 잇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런 거리에서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바로 교육은 거리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교육 역시 이곳과 저곳, 지금과 그 때,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일, 그것이 바로 교육이고, 이러한 다른 세상을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볼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치다는 "나는 이렇게 들었다"를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나는 이렇게 주장한다가 아니라, 이런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이렇게 전달한다는 조술자, 또는 전달자로서의 교육자를 설정하고 있다.
공자도 주나라 주공을, 부처의 제자들도, 예수의 제자들도 '이렇게 들었다'는 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가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교육이란 없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을 다시 한 번 얘기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하늘에서 똑 떨어진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그래서 우리도 다시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말, 그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우치다는 이러한 교육의 개혁을 이야기할 때 교육에서 지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한다.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교육에서 불필요한 존재들을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다. 이렇게 지워가다 보니 지울 수 없는 존재가 남는다. 그것이 무엇인가? 바로 교사와 학생이다.
이 점을 인정하면 결국 교육개혁은 교사와 학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두 존재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우리는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했지 개혁의 주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일본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우치다가 제시하고 있는 교사상은 학생들을 갈등하게 하는 교사다. 갈등한다는 이야기는 나와 다른 존재를 인식한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 이곳에서 다른 곳이 있다는 생각, 그리고 이곳과 그곳을 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다는 얘기다. 이렇게 학생으로 하여금 갈등하게 하는 교사는 그의 지식여부와는 상관없이 좋은 교사라고 할 수 있다고...
그리고 그는 세계화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결과로 인간은 통합적인 모습을 지니지 못하고 파편화,분절화(이를 그는 모듈화라고 한다)되어 있고, 이것이 이지메를 비롯하여 직장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다고 한다.
학교는 이러한 세계화, 국제화의 광풍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할 온실이 되어야 한다고 하고, 이러한 학교의 모습으로 그는 '거리'를 제시한다. 함께 만나고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제대로 된 교육이 된다는 얘기다. 이것은 사이버교육이 어떤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주고, 그것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거리의 교육론이라는 일본어 제목을 "교사를 춤추게 하라"는 우리말로 바꾼 것도 어쩌면 이 책을 능동적으로 읽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아직도 교사를, 또는 교사가 중심이 되어 교육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지 않으니 말이다.
교육부, 교육청에서 나오는 교육개혁이 아니라, 교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즐기면서 바꿔나가는 교육, 그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사실,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