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 실천시선 200호 기념 시선집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00
박수연.최두석 엮음 / 실천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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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시집 200호를 기념해서 나온 시집이다. 그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시집이 드디어 200호를 맞이해서 실천시집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는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실천시집은 "세상에 대해 애정을 갖고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자세를 취하는 시" (최두석의 발문에서)라고 할 수 있다.

 

암울했던 시절,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시집들을 읽으며, 세상은 아직 가능성이 있음을, 우리가 여기서 좌절해서는 안됨을 생각하곤 했는데...

 

암울한 세상에 씨앗을 뿌리는 역학을 한 시들이 많았다.

 

며칠 동안 이 시집을 읽으면서 근 20여년의 모습이 이 시집에 잘 드러나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 시 부분에서 최근에 본 영화 "피에타"가 생각이 났다.

 

청계천을 배경으로, 그 노동자들의 지난한 삶을 그려내고 있는 영화, 가난으로 인해 불구가 될 수밖에 없고, 그 가난을 빌미로 사람들에게 기생하는 사람, 그리고 복수 영화는 그렇게 그려지고 있지만, 그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었다.

 

사랑은 사람을 구원한다. 그 사랑이 시에 나타나 있다. "피에타"의 전체적인 장면은 이 시집에 수록된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를 생각나게 했다.

 

가난한 사랑노래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실천문학사. 2012. 14-15쪽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전문

 

"피에타"의 주인공이 이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런 모습이 이 시에 드러나 있다고 하면 오해일까?

 

사회가 함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시는 아직도 현재형이지 않을까. 아직도 가난으로 인해 버려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난 때문에 삶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영화와 이 시집을 통해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과거로 사라져버린 가난도 아직 우리에게 진행형이라면, 이미 진행중인 일은 앞으로도 진행 중일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리 인간이 길을 내기 시작하자, 다른 생명체들의 길이 없어지고 말았는데... 육지에 길을 내는 것도 모자라, 하늘에 길을 내고, 바다에 길을 내고, 이젠 그것도 모자라니 강에도 길을 내고 만 현실...

 

황규관의 '인간의 길'이란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놈의 4대강, 이제는 이렇게까지 길을 내야 하나 싶어서.

 

인간의 길

 

고래의 길과

갯지렁이의 길과

너구리의 길과

딱정벌레의 길과

제비꽃의 길과

굴참나무의 길과

북방개개비의 길이 있고

 

드디어 인간의 길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가 버려져 있다

 

북방개개비의 길과

굴참나무의 길과

제비꽃의 길과

딱정벌레의 길과

너구리의 길과

갯지렁이의 길과

고래의 길이 사라지고

 

드디어 인간의 길만 남았다

그리고 인간의 길옆에

길 잃은 인간이 버려져 있다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 실천문학사. 2012. 184-185쪽 황규관, 인간의 길 전문

 

실천시집은 우리에게 세상을 똑바로 보라고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집은 그래서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최근에 불거지는 '인간의 길'을 관통하는 우리 시대에 응전한 시인들의 기록, 시인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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