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내렸다. 모처럼 강화도에 쉬러 갔는데... 계곡에 발을 담그고, 말 그대로 탁족을 하려 했는데... 비라니... 탁족은 고사하고, 우산도 변변히 챙겨가지 못해 비를 피하기에 바빴다. 덕분에 어제는 더위를 잊을 수 있었지.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은 어디든지 많았고... 이제는 그 비로 인해 많이 시원해지겠지 했는데.. 오늘은 해가 쨍하다. 다시 덥다. 더위도 결코 호락호락 물러가지 않겠다는 자세다.
오래 된 시집을 읽었다. 민영의 "엉겅퀴꽃"
오래 된 이라는 말이 들어맞는지는 모르지만 벌써 25년 전의 시집이니, 오래 된 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강산이 두 번하고도 반이 바뀐 세월이고, 우리의 생활 모습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으니 말이다.
언제 샀을까? 예전에는 책을 사면 책의 밑에다 날짜를 써두던 습관이 있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책 중에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책들은 2000년이 넘어서 산 책들이고, 2000년이 넘어서부터는 책에다 날짜를 써두지 않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
적어도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내 곁에 남아 있는 책들도 있겠지만, 그 사이에 내 곁을 떠나가야 하는 책들도 있기에, 그 책들에 내 흔적을 문신 새기듯, 낙인 찍듯 남겨둔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짜를 적지 않았다.
이 책은 날짜가 적혀 있다. 1997년 2월 27일.
무더위에 다시 꺼내 읽었는데, 내가 이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추위가 어느 정도 가시고, 이제 곧 봄이 올 때였단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더위도 차츰 사라질 때... 이 시집은 추위가 사라질 때, 그리고 더위가 사라지려 할 때 다시 나에게 다가온 시집이구나. 이런 데서 새삼스러움을 느낀다.
아마도 나는 이 시집을 두 편의 시 때문에 샀으리라. 하나는 '수유리 하나'라는 시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해마다 봄이 되면 4.19가 되면 민영의 '수유리 하나'가 생각이 났고, 힘없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보면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가 생각이 났으니 좋은 시란 그시를 읽는 독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콕 박혀 언제든지 다시 불려나오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민영의 다른 시들도 마찬가지로 사회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다. 오히려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짧은 시편에 담아 다시 세상에 내보낸다. 시인이 시로써 세상에 한 줄기 빛을 더하려 하는 순간이다.
그는 이 시집의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이들이 다 거리로 나가 막강한 힘을 지닌 압제의 무리와 몸으로 부딪칠 수도 없는 것이라면, 힘겨운 겨룸터에 뛰어든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태주고, 그들을 위해 기쁨과 슬픔의 노래라도 불러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자위해보기도 한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후기에서
그렇다. 시인이 천상의 고고함만을 노래할 수는 없다. 지상의 비루함도 시인에게는 노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시인이 노래하는 지상의 비루함으로 인해, 우리는 천상의 고고함으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은 직접 돌을 들지 않아도, 세상의 비루함을 파괴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분단의 슬픔, 가난의 슬픔, 무언가 이루지 못한 슬픔, 사회 모순의 슬픔 등등이 이 시집 속에, 짧은 시행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아마도 이 시집은 몇 년 뒤, 몇십 년 뒤에 읽으면 그 땐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과거가 잘 들어있다. 민주화되기 이전의 우리나라 모습이.
지금도 내 마음에 있는 시 두 편. '수유리 하나' 그리고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이 시들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아직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벗어나야 한다.
수유리 하나
한 늙은이의
더러운 욕망이
저토록 많은 꽃봉오리를
짓밟은 줄은 몰랐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수유리 하나 전문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 늘 약골이라 놀림받았다. /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 아버지 담배를 가져오라 시키고, / 어떤 아이는 나에게 /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그럴 때마다 약골인 나는 /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갖다 주었다. / 떼밀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 얻어맞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 우리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다. /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처음에 친구들은 주춤거렸다. / 비실대며 꽁무니빼는 아이도 있었다. / 일곱이 가고 셋이 남았다. /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약골이다. / 떼밀리고 얻어맞는 약골들이다. / 그러나, 약골도 뭉치면 힘이 커진다. / 가랑잎도 모이면 산이 된다.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쥐도 잡는다. /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 맞더라도 울지 말자! /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 우리 나라도 약골이라 불렸다. /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민영, 엉겅퀴꽃, 창작과비평사, 1987.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