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시원하게...
땅도 적시고, 나무들도, 풀들도, 그리고 따끈하게 데워져 있는 강물들도, 열로 확확 달궈져 있는 콘크리트, 아스팔트들도 적시고, 무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 몸도 마음도 적시게.
그런데 하늘은 여전히 파랗다. 파란 하늘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이 무더위 때문에 태풍도 피해간다고 하지 않는가.
거기에 강들은 녹색으로 덮이고 있다고 하고... 더위에는 장사 없다. 오뉴월 늘어진 개처럼 우리들도 늘어질 수밖에 없다. 이젠 시원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마음이 시원해질 수 있는 시가 무엇이 있을까 책장을 훑어본다. 어떤 시를 읽으면 조금이라도 시원해질 수 있을까. 난해한 시는 제외한다. 머리를 써야 하고, 그 시를 갖고 고민해 빠져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덥다. 이럴 땐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시, 그런 시가 오히려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별로 망설이지 않는다. 서정홍의 시집이다. 무엇이 있나? 찾아보니 두 권이 있다.
"58년 개띠"와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사실, 이 더위에 신경질이 많이 늘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착해질 때'라는 시는 어떨까? 어떨 때 가장 착해질까? 시인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맞다. 이럴 때 우리는 착해지고, 또 더위로 인한 짜증도 누구러뜨릴 수 있다. 요즘 도시에서는 참 하기 힘든 일이지만.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이랑을 만들고
흙을 만지며
씨를 뿌릴 때
나는 저절로 착해진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2008. 초판. 내가 가장 착해질 때 전문
흙과 더불어 사는 사람, 착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얼마나 흙에서 멀어져 왔는가. 흙에서 멀어져 온 결과가 이렇게 더위를 더욱 더 심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서정홍 시인의 이 두 시집은 각기 다른 생활을 그리고 있다. "58년 개띠"는 좀더 시인이 젊었을 때 낸 시집으로 이 시집의 주요 배경은 공단이다. 노동자의 삶이다. 그는 노동자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들이 시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반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극명하게 대조되어 나타난다.
시인은 자신을 출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출세는 우리가 말하는 출세와는 다르다. 그의 시집 제목이 되기도 한 '58년 개띠'라는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황금을 다 준다 해도 / 맞바꿀 수 없는 / 노동자가 되어 / 땀 흘리며 살고 있다.
갑근세 주민세 / 한 푼 깎거나 / 날짜 하루 어긴 일 없고 / 공짜 술 얻어먹거나 / 돈 떼어먹은 일 한 번 없고
어느 누구한테서도 / 노동의 대가 훔친 일 없고 / 바가지씌워 배부르게 살지 않았으니 / 나는 지금 '출세'하여 잘 살고 있다.
서정홍, 58년 개띠, 보리, 2003 고침판 1쇄. 58년 개띠 5-7연에서
말 그대로 세상에 나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살고 있는 모습이 시에 나타나 있다. 그런 시인이기에 없는 사람, 힘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 반면에 있으면서도 군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체하는 사람들까지도.
하여 시인은 시란 어렵게 써서는 안된다고 한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 노동을 하는 사람들, 노동자이건 농민이건 어리건 나이 들었건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시 '우리말 사랑1-4'를 보면 이런 시인의 생각이 너무도 잘 나타나 있다.
그래, 그래, 시는 이래야 해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내가 가장 착해질 때"는 시인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부로 살아가면서 이웃과 함께 어울리고 느꼈던 점들을 그려내고 있다. 노동자 시절에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았던 시인이 농민으로 살아가면서, 흙과 같은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더욱 따뜻해지고 있다. 이 따뜻함이 무더위에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여기에 두 시집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아내에 대한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족이란 무엇인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바로 우리 이웃이 곁에 있는 것처럼, 때로는 미소를 머금게 하고, 때로는 눈물을 짓게 하는 시들이 넘쳐나고 있다. 어느 한 시 어렵지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 않고... 곁에 두고 언제든지 펼쳐보아도 좋은 시들이다.
서정홍 시인이 생각하는 시인으로 마무리 한다.
시인이란
시인이란
쉬운 걸
어렵게 쓰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걸
쉽게 쓰는 사람이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초판, 시인이란 전문
시인
그저 바로처럼
외롭고 눈물 많은
사람입니다.
그 눈물로
세상을 적시고 싶은
사람입니다.
서정홍, 내가 가장 착해질 때, 나라말, 초판, 시인 전문
서정홍 시인의 시가 내 마음을 시원하게 적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