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조해야 할 것
수잔 손택 지음, 김유경 옮김 / 이후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작가이자, 비평가, 연출가로 알려져 있는 손택이다시피, 다방면에 박식하다. 이렇게 많이 알고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을 글로 써낸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여기에는 영미 문학(문화) 또는 서양 문학(문화)에 대해서 무지한 내 자신의 상태가 그를 더 대단하게 보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손택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 중에 솔직히 읽은 게 없다고 해야 하나? 이거야 우리가 세계문학에서 다뤘던 사람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아직은 우리나라에 덜 알려진 작가들을 그들의 위대함을 찾아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니, 내 무지가 그냥 무지가 아님을 위안하여도 되는지...

 

내가 본 것들, 내가 읽은 것들, 그곳과 이곳으로 나누어져 있는 책이다. 각 부마다 나름대로의 일관성은 있지만, 굳이 이렇게 묶을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짜피 안 보고, 안 읽고, 못 가본 곳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손택의 글은 읽을 만하다. 그 이유는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선을 가지고 어떻게 대상을 바라보는지를 손택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부에서는 주로 무용과 영화와 그림 등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를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문화적인 대상을 감상할 때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뭔 얘기인지, 원 작품을 알 수 없으니 그냥 손택의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좀 짜증나기도 하지만... 방향을 바꾸어서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이 어떠한지 파악하는 방법으로 읽으면 읽을 만하다.

 

2부는 그래도 1부보다는 조금 친숙하다. 문학 이야기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도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 아니던가. 여기에서 가장 기억에 부분은 구절은 읽기와 쓰기에 관한 부분이다. 작가는 쓰는 사람이라 읽지 않는다고 하는 작가들에 대해 손택은 자신은 작가이기에 읽는다고 말한다. 쓰기 위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먼저 읽을 수밖에 없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좋은 시들을 많이 읽어라라고 답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마찬가지다. 글쓰기에 대한 자세는 동양이건 서양이건 나름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사람들은 글쓰기만을 고집하지 않느다. 그렇게 쓰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읽어야 했는가. 또 읽을 것인가.

 

그래서 손택은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읽을 수 있어야 좋은 작가라고 말하는 듯이다. 작가에게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글 하나만으로도 손택의 이 책은 나에게 의미가 있다.

 

3부는 그곳과 이곳이다. 이분법으로 갈려진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분법으로 갈라놓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게다. 손택은.

 

여기서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실 여행이란 이곳과 그곳을 극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요소이니 말이다. 예전에는 그곳을 야만의 장소로, 다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이상의 장소로 인식했던 여행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주요 내용은 사라예보에서 있었던 일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전(사실 내전이라는 말보다는 학살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이 한창인 사라예보에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했던 일을 중심으로 그곳과 이곳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리는 그곳을 배제의 장소로 이곳과는 다른 장소로 인식하기 위해서 그곳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어느 곳이나 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곳,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평소에 말이 많던 지식인들이 그곳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다물고 있었는가 하는 사실.

 

그곳에 대해서 약간의 지식이 있었던 나는 손택의 이 글이 가슴에 와닿았다. 멀리서 그곳이라고 지칭했을 땐 이미 그곳과 이곳은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 지금 우리도 그곳이라고 부르는 장소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먼 나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얘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부끄러웠다. 나 역시 그곳은 이곳과 다른 곳으로 구분짓고, 나는 안전한 이곳에서 그곳을 방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나를 반성하게 만든 글이다.

 

그래서 이 책은 뒷부분으로 갈수록 흥미를 끈다. 생각할거리를 제공해 준다. 손택의 글들이 참 자유분방하게 쓰였다는 생각이 들지만(번역의 문제는 아닐테고), 읽으면서 마음이 콕콕 박히는 글들이 있다. 그 점이 손택의 글을 읽게 하는 점인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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