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잠시 쉴만도 하련만... 여름은 제 세상이라는듯이 자기의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더위에 다들 지쳐떨어지고 있는데... 무슨 유럽 사람들처럼 여름 휴가를 한 달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날씨는 점점 더 우리들을 괴롭히는데...
이것 역시 우리들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할 사람도 많겠지. 지구 온난화를 인정하는 사람도 있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으리라.
열대야가 일어난 날수가 늘고 있고, 수온이 상승해서 물고기의 종류가 바뀌고 있으며, 과일의 북방한계선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으니... 게다가 요즘은 우리나라 최고기온을 경쟁이라도 하는듯이 계속 올리고 있으니...

이런 날들이 계속되면 사회계층에 따라서 더위에 대한 피해가 나타난다. 아무래도 힘없는 사람, 못 사는 사람, 경제적으로 하위층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더 고통을 받게 된다. 이런 더위에 집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쉴 수도(어떤 사람들은 에어컨조차도 없고) 없고, 땡볕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힘들 때일수록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자세. 이것이 바로 반성하는 자세 아니던가. 이 시집 전에 읽었던 시집이 "반성"이었다. 풍요로운 80년대를 비루하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모습을 시로 표현했었는데... 이 시집을 읽은 다음 이번엔 무슨 시집? 하다가 제목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이라서 이 시집을 골랐다.
연속해서 읽는 시집인데, 하는 반성이고, 하나는 반성하다 그만둔 날이니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고 말이다. 사실 예전에 다 읽은 시집인데...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으니 예전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했나 보다 하는 생각도 있고, 2008년에 나온 시집이니 1987년에 나온 김영승의 시집보다 21년 뒤에 나왔으니, 내용도 좀 다르겠지란 생각도 있고... 또 하나 이 시집을 고른 이유는 출판사, 실천문학사라는 점도 있다. 실천문학사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회의식이 있는 책들을 냈던 출판사였으니, 이 시집에도 사회의식이 담겨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다.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집은 '이 시다'라고 마음에 꽂히는 시는 없다. 어떤 시집에서는 시 하나가 마음에 들어 전체 시집을 빛내기도 하는데... 그만큼 쉬운 언어로 쓰여진 시들인데.. 읽어나갈수록 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된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자기 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들이 뭉쳐서 전체적인 소리를 낸다. 어라? 이게 이 집의 매력이었구나. 그래서 한 편의 시가 내 맘에 꽂히지는 않았지만, 시집이 강렬한 인상을 내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이 시집의 배경은 "가리봉"이다. 가리봉이라면 잘 모르는 사람이 있겠으니, "구로공단"이라고 하자. 요즘은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어 굉장히 세련되어진 곳. 이 곳의 80년대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그늘이라고 할 수 있는, 김영승의 시에서 나타난 풍요로움 속의 비루함이 전체적으로 몰려 있는 곳이었다. 물론 그 전에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이 강하게 결합했던 곳이기도 하고.
일명 공순이 공돌이들이(이런 말들을 썼던 사람들...자기들도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몰려 있던 곳, 가출 청소년들이 모여들었던 곳, 그 곳에서 자기 청춘의 삶을 시작한 사람. 그 곳의 삶을 시 속에 복원시켜 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그 곳에서 나오려 한다. 그 곳은 자기 시의 고향이지만, 그 고향을 떠나 또 다른 삶을 살려고 한다. 그래서 "반성하기를 그만둔 날"이다.
이제는 세상이 변했으므로,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미래를 찾아 떠나야 한다.
이러한 내용의 시들이 많이 들어 있는데... 2부가 독특하다. 2부는 시인의 개인사를, 가리봉이 아닌, 그녀의 고향인 해남(?)에서의 일을 담고 있다. 특히 어머니, 아버지의 일을.
2부가 눈물나게 슬프다. 아버지의 첩으로 살아가야 하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와 아버지로 인해 겪어야 했던 설움들... 가리봉에서의 생활보다는 시인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 2부의 시들이 아프게 마음에 다가온다. 어머니와 화해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그런 어머니를 결국 하나의 여자로 받아들이게 되는 모습이, 2부에 걸쳐 펼쳐진다. 좋다.
더운 날,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았던 시절을 그려낸 시들을 읽으며 다시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생각해 본다. 나는 반성을 해야 하나,
반성을 그만두어야 하나.
나는 아직도 반성해야 한다. 그만큼 나는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으므로.
무더위,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김사이의 시 한 편을 보자.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나는 잘렸다
터무니없이
5월 연둣빛 나무 이파리를 보는데
휴대전화로, 그래 휴대폰으로
해고통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해고사유는 '잡담'이다.
그리고 더 이상 회사에 갈 필요도 없었다
눈만 뜨면 전쟁을 치르듯이 아이 맡기고
30분 일찍 전철에 구겨져가던 내 밥그릇 자리
그러나 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였고
비공식적으로 잘린 거다
어디에도 내가 흘린 피는 없다
어디에도 내가 살기 위해 노력했다는 흔적도 없다
자본이 숨 쉬기 위해 내가 숨죽이다가
이름도 인격도 빼앗긴 결과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가난한 집 딸이고
돈 벌어야 하는 아내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자본은 너무 자유롭고 나는 갇혀 있다
자본은 너무 안전하고 나는 위태롭다
이제 종이 울리면 쉬러 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본, 그래 돈이라는 것이
정규적으로 쉬러 간다
언제든지 공식적이지 않게 나는 잘리고
무엇을 위하여 종이 울린단 말인가
김사이, 반성하다 그만둔 날, 실천문학사 2008 초판, 무엇을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내가 꿈꾸는 사회. 종은 우리를 위해서 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