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매혹적이다. 반성이라. 도무지 반성이란 모르고 사는 현대에서 반성이라는 제목으로 반성이라는 시들만 주욱 실려 있는 시집이다. 그렇다고 반성1부터 반성 844까지(이 시집은 반성 연작시인데... 차례를 보니 844번이 가장 뒷번호다. 다 실려 있지는 않고 중간중간 빈 번호들이 있다.) 순서대로 되어 있지는 않다. 내용들에 따라서 이 반성 연작의 순서는 바뀌어 실려 있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고 자신을 하루에 세 번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 살펴봄이라는 말은 반성이라는 말과 같고, 반성이라는 말은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바라볼 수 있다는 말과 같으니, 자신을 떨어뜨려 놓는다는 일은 시와는 거리가 맞지 않을 듯하지만, 시인이 세상을 주관적으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은 결국, 그렇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자신과 분리하고, 세상을 바라본다는 의미라고 생각하면, 시인에게 반성은 필수품이어야 한다.

 

반성. 그러나 이 시는 직설적이지 않다. 무엇을 반성하고 있는지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비루한 자신의 삶을 독자에게 보여준다. 얼마나 비루하냐면 자신의 삶을 자신이 능동적으로 살지 못하고 억지려 밀려서 산다고 표현한다. 일명 밀어내기

 

반성 72

 

나는 대변을 보는 게 아니라

밀어내기 하는 것 같다.

만루 때의 훠볼처럼

밀어내는 것 같다.

죽기는 싫어서 억지로 밥을 먹고

먹으면 먹자마자

조금 있으면 곧 대변이 나온다.

안 먹으면 안 나온다.

입학도 졸업도 결혼도 출산도

히히 밀어내는 것 같다.

먹고 배설해 버리는 것 같다.

사랑도 이별도

죽음도.

 

김영승, 반성, 민음사, 2009년 개정판 2쇄. 반성 72 전문 

 

비루한 삶이기 때문에 온갖 비속어가 시에 등장한다. 따라서 아름다운 시가 아니다. 시에는 술과 피와 정액이 난무한다. 자신이 사는 곳을 잠수함이라고까지 표현했으니... 이 시의 전체적인 주조는 액체이다. 액체 중에서도 끈끈함이 느껴지는 맑음과는 거리가 먼 그런 액체.

 

왜 사는 곳이 잠수함인가. 간단하다. 반지하방에 살기 때문이다. 반지하방, 가난한 사람들의 거처. 그 곳에 존재하는 습기, 축축함, 그리고 삶의 고달픔.

 

시인이 시집을 낸 때는 80년대다. 우리나라가 풍요로움의 절정을 향해 치달릴 때다. 흥청망청, 우리도 곧 선진국이 된다고, 경제는 호황을 이루고, 세계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은 높아지고 있는 때... 이 때 다들 행복할까? 이런 질문을 시인은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시인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다는 답을 내린다. 자신의 삶에서, 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삶을 보고서. 그래서 모두들 행복에 겨워해야 한다고 할 때 아니라고, 아닌 삶들이 도처에 있다고, 과연 이것이 행복이냐고 시인은 질문을 한다.

 

이 질문이 때로는 비속어로 나타나고, 비꼼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는 많은 시들이 논리성이나 체계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말이 안됨, 말들이 꼬여 있음, 비논리성 등등이 시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바로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80년대의 모습이다.

 

80년대 자조적으로 유행했던 말. 3S. SEX, SCREEN, SPORTS.

 

이 때 우리를 휘감았던 이 말들은 액체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끈적끈적한, 우리네 삶에 달라붙는. 우리네 삶을 더 밝고, 명랑하고, 풍요롭게 해주어야 할 대상들이 위로부터의 강제로 인해 우리 삶을 더 어둡고, 더 힘들고, 가난하게 해주는 대상으로 전락한 시대가 80년대 아니던가.

 

이러니 시인이 반성할 수밖에. 그가 반성 연작시를 쓸 수밖에. 그렇다고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다 칙칙하지는 않다. 본래 어두움 속에서도 밝음이 있듯이, 어려운 삶에서도 행복이 있다. 어쩌면 낮은 곳에서 사람들은 더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시를 보자.

 

반성 100

 

연탄장수 아저씨와 그의 두 딸이 리어카를 끌고 왔다. 

아빠, 이 집은 백 장이지? 금방이겠다. 머.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 아이들이 연탄을 날라다 쌓고 있다.

아빠처럼 얼굴에 껌정칠도 한 채 명랑하게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딸을 낳으면 이 얘기를 해 주리라.

니들은 두 장씩 날러

연탄장수 아저씨가 네 장씩 나르며 얘기했다.

 

김영승, 반성, 민음사. 2009년 개정판 2쇄. 반성 100 전문

 

이 시집이 87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니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이 시에 나온 내용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아직도 80년대 풍요로움의 뒷모습이 사라지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있는가. 나는? 나는 반성하고 있는가?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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