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열어 둔 문으로 가끔 바람이 들어온다. 그 바람이 온몸을 시원하게 훑고 간다. 좋다.

 

그런데 이 바람보다도 먼저 소리가 들어온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 이 소리와 더불어 뜨거운 열기도 함께 들어오고 있다. 차들이 뿜어내는 열기, 그리고 그 차들의 힘을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아스팔트에서 뿜어져나오는 열기,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건물들에서 내보내는 열기, 더 심한 열기는 자신이 시원하자고 밖으로 열기를 배출해내는 에어컨 송풍기에서 나오는 열기다.

 

밖을 내다본다.

 

하늘은 파랗다. 그리고 하얀 구름이 간간히 하늘을 떠다니고 있다. 이에 햇볕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려고 하는듯이 강렬하게 열기를 내뿜어대고 있고...

 

주변의 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데, 이 열기들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동료들이 없다. 예전 같으면 주위에 흙과 돌과 물들이 있었을텐데... 여기에 다른 풀들도 함께 해서 그 열기들을 함께 나누었을텐데...

 

흙과 풀과 돌과 물들이 모두 콘크리트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이제 남으 것이라곤 인간이 만든 물질문명들 뿐이다.

 

나무보다도 높은 아파트들... 어디를 보아도 인공 건조물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나무들이 가로수란 이름으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이 나무들조차 없었다면 얼마나 황량했을까.

 

아마도 회색도시가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도시에 살되, 시골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은데...아직은 여유가 없다. 생활이 아닌 생존이므로.

 

물론 탈탈 털고, 그냥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되는데... 그 용기가... 여러 갈래에서 발목 잡혀 있다.

 

최승호의 생태시집을 펼쳐들다. 삶이 아직 생태적이지 않지만, 그래도 생태적이길 바랄 수는 있지 않은가. 됴요새라는 출판사 생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출판사이고, 또한 종이를 재생지로 쓰고 있으니, 생태시집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은가.

 

최승호가 발표한 시들 중에서 생태와 관련된 시들 78편을 가려 모았다고 한다. 시집의 처음에 쓰인 글이 가슴을 울린다.

 

문명은 여전히 어리고 갈수록 불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아직도 이 놈의 문명은 더 자라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 그로테스크하다. 기괴하다. 그의 시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우리의 편리를 위해서 자연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그 파괴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요즘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여 우리들의 문명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부르도자 부르조아

 

반이 깎여나간 산의 반쪽엔

키 작은 나무들만 남아 있었다

 

부르도자가 남은 산의 반쪽을 뭉개려고

무쇠턱을 들고 다가가고

돌과 흙더미를 옮기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때 푸른 잔디 아름다운 숲속에선

평화롭게 골프치는 사람들

그들은 골프공을 움직이는 힘으로도

거뜬하게 산을 옮기고

해안선을 움직여 지도를 바꿔놓는다

산골짜기 마을을 한꺼번에 인공호수로 덮어버리는

 

그들을 뭐라고 불러야 좋을까

누군가의 작은 실수로

엄청난 초능력을 얻게 된 그들을

 

최승호, 부르도자 부르조아 전문 (47쪽)

 

이게 일부 사람들의 이야기일까. 어쩌면 우리들 이야기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편하게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파괴가 일어나는지 성찰해야 한다. 그런 성찰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우리는 지구에게, 우주에게 암세포가 되고 만다.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한다.

 

더운 날, 최승호의 시집을 읽으며 생태에 대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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