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나날들이다.
무엇 하나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늘 불법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파업을 하고도 나중에 온갖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려야 하고, 한 번 해고되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받아야 하고, 복직은 참으로 멀고 먼 세월을 기다려야(투쟁해야) 한다.
또 조금만 진보적인 소리를 하면 좌파니(좌파란 말은 그래도 낫다. 이 말은 진보적이다라는 말로 받아들이면 되니 말이다) 하는 소리를 듣는데, 이 좌파 중에서도 종북 좌파라고 하여 딱지를 붙여 버린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공식적인 정당에 속한 사람을, 그것도 비례대표로 선출한 사람을 종북좌파라고 몰아붙이는 이 세상이 말이다. 여기에 자연은 녹색성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미사여구로 망쳐지고 있으며, 교육 현장은 일제고사다 뭐다 하는 경쟁위주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정치인이나 경제인이나 모두들 나를 우울하게 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우울하게 지낼 수만도 없는데...
이 때 삶창이 왔다. 삶이 보이는 창, 삶을 보여주는 창.
이런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신영복 선생의 글처럼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삶이 이 책에 드러나 있다.
읽는 동안 잠시 우울에서 벗어난다.
우울을 이겨낼 수 있단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큼 이 책에서는 삶을 진실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요즘은 짤막한 소설까지 들어 있어 읽는 재미도 있다. 그동안 생활글이 많아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면, 이제는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도 있다. 더욱 풍성해졌다고나 할까.
이번 호의 기획은 '첫'이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겪게 되는 '첫'. 그 중 어떤 '첫'에 마음을 줄까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면 더 좋겠다. 도대체 내 기억에,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첫'은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조금은 마음이 신선해진다. 아직도 나는 '첫'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늘 '첫'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좋겠다. 그러면 늘 '설렘'을 안고, 늘 '희망'을 안고, 늘 '씩씩함'을 지니고 삶을 대하게 될테니 말이다.
우울한 시대, 아직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우리 삶에서 이 책의 특집인 '첫'을 생각하자. 이 '첫'의 설렘과 희망으로 우리의 삶을 밝고 힘차게 만들자.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이다.
자, 나도 '첫'을 생각하고 힘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