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사,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 모두가 행복한 학교 참여하는 수업 만들기
윤성관 지음 / 살림터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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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에 대한 책이 워낙 많이 나와 있어서, 제목만 보고는 또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강의법부터 시작하여 혁신학교에 관한 책까지, 여기에 대안교육에 관한 책과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배움의 공동체 책까지 하면 교육에 관한 책의 전성기라 할 만하다.

 

게다가 자율학교부터 혁신학교까지 얼마나 다양한 학교가 있는가? 또 학교에서는 얼마나 다양하게 실험을 하고 있는가? 교육의 백가쟁명 시대라고 하면, 이런 시대를 만들어준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에 관해서는 저마다 전문가라고 자처하지만, 현실에서는 늘 그 얘기가 그 얘기가 되고만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그건 이론에 불과해 하고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으며, 학생들은 그런 논의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잘 알지 못하고 넘어가고 있으며, 부모들 중에서도 소수의 부모만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에 관해서는 저마다 자신의 이론을 내비치고 있지만, 이 이론들이 현실로 들어오는데 오래 걸리며, 또한 들어와서도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가 있듯이 그저 그런 또 하나의 이론으로 그치고 마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니 거의 다라고 해야 한다.

 

그 결과 학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 모습 그 대로 주욱 버티고 있다. 곳곳에 작은 균열이 났음에도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난 건물과 같이 학교는 그 균열들을 껴안고 그냥 그렇게 안녕하다. 우리의 학교는 늘 안녕하다. 전혀 안녕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보태 학교의 변화, 수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을 보면 얼핏 일본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이 책은, 그러나 사토 교수의 글이 일본의 현실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책이라면, 이 책은 철저하게 우리나라 공교육 현장에 바탕을 두고 쓰여진 책이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고, 또 실천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제시되기도 한다. 책의 부분 부분이 수업행복으로 되어 있다. 수업행복1에서 수업행복7까지 글쓴이는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이 일곱 개의 장에서 잘 담아내고 있다. 물론 자기와 똑같이 하라는 소리는 당연히 하지 않는다.

 

학교는 다 다르고, 같은 학교라 해도 교실은 다 다르며, 같은 교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수업 각각은 다 다르고, 아이들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교사들도 다 다르다. 이 다름을 인정한다면 수업행복에 다가가는 첫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학교가 이 다 다름을 암묵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직 우리,우리 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가 불거졌다는 생각을 하면 다름의 인식은 곧 수업행복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업의 행복을 찾는 길, 어떤 수업을 하고 있는가로 시작하여 왜 수업이 힘들까,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들은 왜 수업에 어울리지 못할까, 이런 아이들을 어울리게 하는 방법은, 수업을 힘들에 하는 이들은, 그리고 나는 나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가라는 내용의 제목들을 각자 달고 있다.

 

교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 아닐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초중학교는 거쳤기 때문에, 자신들이 경험한 학교와 자신들의 자손들이 경험하고 있는 학교를 비교하고, 지금도 그다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다름을 인식한 데서 출발한 이 책은 이게 정답이다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답은 없기 때문이다. 정답을 찾는데 교육이 전부인 줄 알고 지내온 우리들에게는 좀 황당한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교육에 정답은 없다. 정답은 주어진 무엇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교육에서 수업의 행복을 찾은 길은 그 때 그 장소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러한 나, 우리의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노력에 행복한 수업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할테다.

 

뒤로 갈수록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섬 전문(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1993년 20쇄 65쪽)

 

행복한 수업을 이 시의 섬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은 학교를 통해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강조하는 '사이'이리라. 이 사이를 섬이라고 하고, 수업이라고 하면 아이들과 교사들은 이 수업을 가운데 두고 서로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과정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누군가 커다란 다리를 놓아줄 수도 있지만, 그 다리가 놓인 섬은 교사와 학생이 가고 싶은 섬이 아니다. 그 섬은 그냥 지나쳐가는 섬에 불과하다. 그런 섬을 교사와 학생은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그들이 고려하는 '사이'로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교사와 학생은 수업이라는 섬에 하나 하나 자신의 힘으로 징검다리를 놓는 일을 해야 한다. 그 징검다리가 결코 편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하나 제 발 길이에 맞게 놓는다면 수업이라는 섬에서 즐겁게 서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한 징검다리를 놓는 역할을 이 책이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아니,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 아니라, 징검다리를 놓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고 해야 하겠다.

 

이 시를 바꾸어 생각하면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섬이 있다. 교사와 학생은 그 섬에 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런데 그 섬에 가는 길은 누가 놓아주지 않는다. 교사와 학생이 스스로 자신들의 발길이에 맞게 하나하나 징검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래서 한 발 한 발 건너 섬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즐거운 수업을 해야 한다. 이렇게 바꿀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이루어진다면, 교사는 조향미 시인의 '고향 같은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내게 고향 같은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객지 어느 쓸쓸한 길모퉁이 돌다가

생업에 낯선 사람들에 시달리다가

문득 가슴 넘치는 안온함으로

떠올릴 수 있는 선생님

시외 버스로 두어 시간이면

달려갈 수 있는 동네

사립문 활짝 열려 있고

늦도록 남포불 내걸려 있는 집

그리운 흙냄새와 낯익은 풀꽃들

서리서리 벌레 울음도

가슴 가득 품고 계신 분

내게 그런 선생님 한 분 계셨으면

 

또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선생님 되었으면

조향미, 고향 같은 선생님 전문(나는 선생이 아니다, 우리교육, 2002년 13쪽)

 

이런 선생님, 바로 우리가 섬에서 만난 선생님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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