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지도 않은 책이다. 그리고 아렌트 전기도 아니다. 이 책은.
아렌트의 저작들에 대한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데, 단지 개론서라기보다는 아렌트 이론을 자신의 틀을 가지고 해석한 책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도 두껍지 않은 이유는, 제목에 있는 스토리텔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논문처럼 정교하게 아렌트의 이론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자리매김하지 않고, 그냥 아렌트 저작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 속에 자신의 관점을 집어넣고...
그래서 이 책은 아렌트의 저작을 다 읽은 사람이 읽으면 좋다. 자신의 생각과 비교할 수 있으므로.
아니면 거꾸로 아렌트의 저작을 읽으려고 생각한 사람이 읽어도 좋다. 아렌트의 저작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있으므로.
아렌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조건, 전체주의의 기원, 혁명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리고 정신의 삶 등을 중심으로 각 장을 나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문학작품까지도 곁들여서.
작은 책에 아렌트 사상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저자가 이해한 아렌트이기에, 우리 자신이 아렌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정하는데는 조금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이야기 하기는 자유와 관련이 된다고 한다.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건으로부터 조금 떨어뜨려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이를 종합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려하여 자신의 말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하여 이야기 하기는 정치적인 활동이 되고, 자신의 삶을 남에게 드러내는 용기를 지녀야지만 가능하다. 여기에 또한 남을 인정한다는 약속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을 지니기에 서로 다르게 행동한다는 점을 이해하는 용서까지도 지녀야 하는 활동이다.
이런 활동을 아렌트는 자신의 저작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아렌트의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아렌트를 한 번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읽어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덧말
아렌트가 플라톤보다는 소크라테스를 지지한다고 했는데, 즉 소크라테스는 사람들 사이에 내려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모습을 지녔다면, 플라톤은 사람들을 떠나 사람들 외부에서 진리를 주입하려 했다고 그래서 아렌트는 소크라테스가 정치 활동을 하는 공적인 활동을 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를 지지한다고 자신이 말하면서도 그 자신의 이론은 플라톤과 비슷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렌트가 과연 자기의 이론을 사람들 곁으로 가지고 내려와 그들과 함께 토론을 했던가? 설득을 하려 했던가?
아렌트는 플라톤의 철학자처럼, 자 이것이 진리다. 너희들은 우상밖에, 그림자밖에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의 저작들이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론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고,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야 겨우 알듯한 이론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그리스-로마 전통에 익숙해져 있는 서양 사람들도 이 아렌트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알 수 있는데, 동양적 사고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아렌트는 소크라테스라기 보다는 이미 진리를 알고 있는, 그래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는 플라톤과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렌트가 무국적자로 살다가 미국에서 국적을 얻었기에, 그런 무국적자 체험이 아렌트로 하여금 인간사회에서 한 걸음 떨어져 관조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니...
이래 저래 아렌트는 나에게는 어려운 철학자임에는 틀림없는데... 이 책을 읽어도 사실 정리가 안되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아렌트는 내 삶의 전체를 통해서 계속 반추해내야 하는 철학자인지도 모르겠다.
삶 전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할 수 있다면, 그 때는 아렌트를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