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약속 푸른숲 필로소피아 14
한나 아렌트 지음, 제롬 콘 편집, 김선욱 옮김 / 푸른숲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정치 철학자 아렌트. 그의 유고집이다. 그러므로 체계적이지는 않다. 그럼에도 아렌트의 사고 전반을 알 수 는 책이므로 읽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앞에서 번역자의 해설과 뒤에 있는 편집자의 해설이 그나마 이해에 도움을 주지만, 하여간 상당히 고민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은 맞다. 그렇다고 읽기로 끝내서는 안된다. 읽기란 삶을 변화시키는 행위 아니던가.

 

그리고 읽기 자체가 아렌트의 말로 하면 정치 행위 아니던가. 우리는 자신만의 생각으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읽기란 곧 대화이고, 이 대화는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의 대화이기도 하고, 읽는 사람 자신의 하나 속의 둘의 대화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은 사람, 또는 읽을 사람과의 대화이기도 하니, 읽기는 결국 자신의 관점을 다른 사람의 관점과 비교하는 행위가 되고, 이러한 행위는 바로 정치적 행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의 말을 인용해 보자.

 

정치는 인간의 복수성에 기초한다.(132쪽)

 

단수의 인간이 아니라, 복수의 인간이기에 정치가 필요하고, 우리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나? 아렌트의 말을 또 인용하면 여기에는 판단이 필요하다.

 

정치 영역에서 우리는 판단 없이는 전혀 기능할 수 없는데, 정치적 사고는 본질적으로 판단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140-141쪽)

 

그렇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판단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아렌트는 '우리의 삶과 연관된 우리의 사적인 경험과 가족적 연관관계에서 벗어남으로써만'(164쪽)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가 소위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아렌트의 지적에서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는지는 말 안해도 다 알겠고, 이들은 공적 영역을 사적 영역으로 바꾸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말하면 정치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치가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아렌트의 관점에서 올해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올해가 얼마나 중요한 해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무려 선거가 두 번이나 있는 해이고, 이 선거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정치적 행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면, 국회의원과 대통령이라는 소위 정치가를 뽑는데 우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해야지만 올바른 정치행위를 하게 된다고 본다. 우리가 정치 행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렌트가 말하는 이러한 정치가를 선출하지 못할테니 말이다.

 

정치가란 정당체제라는 우회적 방법을 통해 인민들의 대표자를 자처하며, 또한 국가 내에서, 필요하다면 국가에 대항해서 인민의 이해를 대표하는 사람이다. (185쪽)

 

자. 이런 사람을 정치가로 뽑아야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들이 제대로 된 정치 행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 행위를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바로 불편부당성이다. 불편부당성은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편견을 극복하는, 그래서 우리의 의견으로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자세를 지니고 행위함을 말한다.

 

불편부당성을 지니기 위해서는 거리를 둘 수 있어야 한다. 관조할 수 있는 능력, 여기서 판단이 나오고, 사유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즉, 이전투구 판에 끼어들어 함께 진흙을 묻히며 뒹군다면 우리는 행위에 매몰되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과거를 살필 수 있어야 하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과거와 미래 사이인 현재에 내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사유해야 한다.

 

최소한 이야기꾼이 되어야 한다. 정치판을 보고, 그 정치판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 그는 정치판에서 거리를 두고, 불편부당성의 관점에서 판단을 하고, 그 정치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순간의 행위를 영원으로 기록하고, 이야기로 전달하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하기, 이건 엄청난 정치행위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적어도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지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수가 없다.

 

과거 747공약으로 대표되는 많은 공약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판단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올해 정치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내걸고 있는 수많은 공약들의 실현가능성, 타당성을 판단할 수 있게 될 테고, 그렇다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게 됨으로써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정치 행위를 하게 된다.

 

정치,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무슨 무슨 정치 집단, 또는 정당에 가입한다고 해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정치는, 이러한 행위들을 보고,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행위 속에 있다. 이 행위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때 정치는 바로 우리 곁에 있게 되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정치적 인간'이 된다.

 

우리 정치적 인간이 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