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전철을 탄다.

먼 거리를 갈 경우, 전철은 책을 읽기 좋다.

아니 좋았다.

예전엔 신문을 보는 사람부터 두꺼운 책을 읽는 사람까지 참 많았다.

30분 이상 가는 거리일 때는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되었다.

여기에 책들을 보면 무슨 무슨 도서관이라고 책의 주인임을 알리는 표시도 된 책도 많았고.

 

하지만 지금은.

사방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신문을 넘기는 소리가 아닌, 노래소리, 드라마 소리.

저마다 손에 하나씩 들고 있는 전자기기들.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들.

그러나 이어폰을 비집고 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렇게 크게 들어도 되나 싶을 정도다.

 

책이 없으면 차창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생각할 틈을 지니지 않는다.

생각은 이미 낭비라고 생각하는지, 조금도 심심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심심함, 그 권태는 요즘 세상에서는 죄악이다.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니, 몸도 정신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생각이 자리를 잡을 여유도 공간도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런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줄어들었겠지.

서점에서는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찰길이 멀수록 복되다. (이태준의 '책'이란 수필에서)

따라서 전철에서 읽을 수 있는 크기의 책도 사라져가고 있다.

일명 문고판.

가격도 싸고, 손에 잡기도 좋고, 또 주머니에 넣기도 편하고.

일석 삼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갈증을 채워주었던 그 문고판들.

지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직 나오고 있긴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전철을 타면, 이 디지털 시대에 아직은 아날로그로 살고 싶어진다.

그래서 가끔 전철 안에서 읽을 책을 고른다.

어떤 책을 가져갈까.

너무 무거워도 안되고, 너무 두꺼워도 안되고, 내용이 너무 어려워도 안되고...

그러다 한 권 고르고...

가는 내내 읽으며 생각하는 재미.

전철을 타고 가는 맛이 난다.

즐겁다.

 

이번엔 이태준의 무서록을 골랐다.

두서없이 쓴 글. 순서가 없는 글.

수필집이다.

순서 없이, 자기 생각을 체계적으로 썼기에 아무 부분이나 맘에 드는 부분을 고른다.

그리고 읽는다.

그냥 손가는 대로 읽는다.

첫 번째 무심히 펴들었는데... "책"이다.

이런 기막힌 일이.

순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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