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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은 죽었다는 선언이 있었다. 문학이 사회 현실에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이어 나온 말이다. 그만큼 문학은 작은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사회 현실을 포괄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횟수가 점점 줄어 요즘은 거의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읽은 책이 [광장]이었고, 이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우습다. 문학이 죽었다고 선언된 시대에 한참 옛날에 쓰인 소설을 읽고 있다니. 그런데도 이 책들이 아직도 우리에게 소설 속의 현실은 지속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으니...
옛날 책을 뒤져보니 1978년 초판이라고 하던데...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은 2009년 114쇄고.
무려 114번이나 찍어냈는데... 그래도 읽히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젠 그 땐 그랬지 하고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노동자들의 지난한 삶도, 자본가들의 몰상식한 삶도 웃으며 그 때는 왜 그랬을까 이러면서 지냈으면 좋겠는데...
70년대에 비해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와 있을까?
이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 속의 난장이들에서 우리는 거인이 되었나? 아니 거인은 아니더라도 보통사람은 되었나?
2대8사회니, 승자독식사회니 하면서, 가뜩이나 살기 힘든데, 자유무역협정이다 뭐다 하여 일반 소시민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지 않았나?
고등학교 교실에서 시작하여 고등학교 교실에서 끝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반복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난의 재생산, 부의 세습...
난장이 아들의 저항을 이해할 수 없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편의 주인공처럼,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으니... 하긴 얼마 전엔 의무교육에서 급식을 의무로 하자는 주장도 포퓰리즘이라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데, 이 70년대를 다룬 소설이 가슴에 와닿으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난장이 아들 영수의 행동이 결국 개인적인 저항으로 그치고 말았다면, 아니 그의 저항이 다른 이들의 의식을 깨우치는데 일조를 했으니, 개인적인 저항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해야 하나, 지금 우리는 1%의 지배를 거부한다는 세계적인 움직임에 동참해야 하지 않나.
이 책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니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에게도 일어나는 일이다. 70년대엔 난장이들이 내국인들로 채워져 있었다면, 이젠 난장이들은 내국인에다가 외국인노동자까지 더해져 있는 상태이니...
난장이 딸인 영희가 난장이들이 함께 남들을 의식하지 않으며 사는 마을, 릴리푸트를 꿈꾸었듯이 우리도 우리들만의 릴리푸트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움직임이 이미 있지 않은가? 작은 마을, 또는 생태 마을, 협동 조합 만들기. 이것이 은강그룹과 같은 거대 자본과 맞설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오랫만에 읽은 소설.
마음이 편하진 않다. 그러나 이런 현실을 알려주는 소설이기에, 아직도 진행 중인 이야기기에 이 소설은 2010년대인 오늘날까지도 우리들에게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