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말이 막히면 사회는 죽는다. 

말이 살아야 사회도 산다.  

이렇듯 말은 사회의 건강 척도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우린 얼마나 말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가? 

혹, 말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말에 대한 자기 검열,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상태, 즉, 내 말이 아닌 남의 말로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논쟁이란 없고, 오직 사활만이 있을 뿐이다. 말로 인해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말에서 지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이 몰락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발전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말들과 말들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를 다듬고, 보듬어 더 좋은 말들을 생산해내도록 해야 하는데... 

윤휴... 

난, 이 사람 이름을 박세당과 같이 사문난적(斯文亂敵)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문... 유학자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말.. 그러면 사문난적이란 유학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유학을 어지럽힌다는 말이, 결국은 주자의 해석을 반대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려는 사람이라니... 

공자도 아니고, 맹자도 아닌, 주자를 절대적인 자리에 올려놓고, 주자의 해석만이 바른 공자,맹자 해석인양 하고, 다른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을 사문난적이라 하여 배척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으니... 

윤휴가 중용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다고 송시열이 그렇게 미워했다니... 원...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하나의 해석에만 매달리는 사회는 경직된 사회,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실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냥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학설을 주장한 사람만으로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윤휴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오히려 이 책은 윤휴의 사문난적의 모습보다는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휴가 뼛속까지 북벌을 주장하고, 북벌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회 개혁, 국방 개혁을 시도했다는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윤휴는 정적에게 미움을 사고, 결국은 이런 일들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몫하는 것이 바로 당쟁이니... 서인이면 서인, 남인이면 남인, 그리고 서인에서도 노론과 소론으로, 남인은 청남과 탁남으로 갈리고 있고, 이들은 자기 당의 일이라면 왜곡도 서슴지 않았으니... 당론이면 개인은 따라야 한다는 지금의 모습과 별다른 점이 없다. 

윤휴의 개혁방안은 놀라운 것이다. 이런 정책이 시행이 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호패대신 지패를 쓰게 해서 사람들은 평등하다고 인식한 그, 그리고 서얼도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 또 그가 제시한 '호포제는 양반 사대부가도 모두 군포를 납부하자는 방안인 반면, 구산제는 양반 개개인의 숫자를 조사해 모두 군포를 내게 하자는 법(222쪽)'이라고 이 법이 시행이 되면 우리나라 세금이 늘고, 그러면 재정이 풍족해지고, 이는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을텐데... 백성에게는 좋았겠지만, 권력자들에게는 좋지 않았을테니... 

양반들이 들고 일어난 일은 당연한 일. 결국 양반들, 아니 권력가들의 반발에 이 정책은 제대로 시행도 되지 않고 폐지되고 만다. 

지금도 말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외치지만, 이것이 말뿐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이런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 때부터 유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이 권리는 가지되, 의무는 가지지 않는 역사적인 연원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윤휴는 아마도 제거대상 1호였을 것이다. 그는 정치를 당략에 따라 하지 않고, 옳음에 따라 했으며, 정치의 기본을 백성에게 두었지, 권력자들에게 두지 않았기에...그 시대에 용납이 되지 않았으리라. 

다만 나는 윤휴의 북벌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일진대, 어떻게 백성을 위한다면서, 수비형이 아닌 공격형 무장을 주장했을까. 

청나라에 치욕을 당했다치더라도, 이미 그 치욕은 전의 일이고,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전쟁이라는, 북벌을 추진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정책을 펼치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시대적 한계이긴 하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글쓴이의 글솜씨가 어렵게 될 수 있는 역사책을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숙종이 윤휴를 그리도 중용하다가, 죽일 정도로 미워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깊게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숙종이 서인의 쿠테타를 두려워해 그러했으리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 또 이 책에서는 윤휴의 사상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다른 성리학자들과 다른지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주자의 해석만이 옳으냐 하는 말과, 중요의 장구를 바꾸어 놓은 것 정도만 나오는데... 어떤 점에서 다른지가 더 구체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이 책 내용과 제목인 침묵의 제국이라는 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윤휴가 죽게 되는 이유가 몇몇 단어 때문이라, 말로 인한 화이기에, 윤휴가 처형됨으로써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탄압을 받았는지를 중심으로 썼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제목하고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윤휴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읽히게 쓴 책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침묵의 세계... 어쩌면 지금 우리도 침묵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닫힌 말의 세계에 살면 안된다. 말은 해방되어야 한다. 그 점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덧말 

식년은 자(子), 묘(卯), 오(吾), 유(酉)자가 들어가는 해라고 했는데... 한자어들은 서로 통한다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십이간지는 오(吾)가 오(午)이어야 하지 않나... 오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대중들이 읽는 책이라면 대중들이 많이 쓰는 한자어로 써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7쪽의 병오(丙吾)는 병오(丙午)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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