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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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란 말이 많이 들린다. 자신은 강남 사람들처럼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혜택을 누리면서도 말은 좌파적, 진보적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처음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던 말이다. 그런 말이 요즘은 그래, 난 강남 좌파다. 내 이런 조건이 내 사상을 좌파로 규정하지 말란 법 있느냐는 말로 바뀌어 쓰이고 있기도 하다.  

하여 강준만은 이 책에서 강남 좌파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세 가지 분류 기준을 제시한다. '강남'의 성격, 주체의 위상, '좌파'의 실천. 이렇게 세 가지 기준에 의해 다시 세 가지씩 나뉘어 강남 좌파는 9가지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첫번째 '강남'의 성격에서는 경제적 강남 좌파(경제적으로 상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 문화적 강남 좌파(생활방식-문화향유 방식이 부유층과 유사한 사람들), 연고적 강남 좌파(소위 명문대를 나온 사람들)로 나뉜다고 한다. 이런 기준을 보면 강남 좌파가 꼭 부자일 필요는 없다. 

두번째 주체의 위상에서는 공적 강남 좌파(지도자, 정치인, 고위 공직자 등), 중간적 강남 좌파(언론인, 시민운동가, 대학교수 등), 사적 강남 좌파(일반 시민)로 나누고 있다. 

세번째 '좌파'의 실천에서는 이타적 강남 좌파(이념과 삶의 수준을 일치시키려는 사람), 합리적 강남 좌파(이념은 좌파지만, 생활은 나름의 이기심을 발휘하는 사람), 기회주의적 강남 좌파(자신의 이익을 위해 좌파의 이념을 이용하는 사람)로 나누고 있다. 

이런 다양한 강남 좌파의 개념이 칼로 무를 썰듯 명확히 구분되지는 않고, 그때그때 이합집산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강남 좌파라는 말보다는 진보를 표방하는 엘리트 집단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2  

강남 좌파는 노무현 시대에 나왔다고 한다. 그런 개념이 예전에는 없다가 노무현 시대에 들어와서 강남 좌파라고 제 생활은 우파인데, 사상만 좌파인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노무현 시대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다을 강준만은 민주확 이루어진 시대 이후에는 엘리트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그래서 예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것들이 이 시대에서는 문제로 불거지게 되었다고 한다. 즉 엘리트를 바라보는 관점이 변한 것이다. 

예전에는 개인적인 결함이 민주화 운동이라는 대의에 묻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면 민주화 이후의 시대에는 개인적인 결함이 치명적으로 다가오게 되고, 사람들이 더 문제삼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졌다는 건, 정치가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했다는 이야기고, 이는 개인적인 실천과 이념을 비교, 판단할 수 있는 시대적인 여건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민주화 운동을 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던 시대에서, 이제는 개인의 생활과 자신의 신념이 얼마나 일치하느냐 하는 쪽으로 평가 기준이 옮겨갔는데, 그걸 인지 못하고, 왜 우리만 갖고 그래라고 항변한 그 시대 정치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3  

강남 좌파는 아닐지라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강준만 특유의 실명 비판이 시작된다. 여기서 굳이 강남 좌파로 분류된 사람만 다룰 필요는 없다. 강준만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정당은 이념으로 뭉친 집단이 아니라, 인물을 중심으로 모인 집단이고, 이들은 선명한 이념을 내세우기 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증오로 그 이념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남 좌파에 속하는 인물만이 아니라, 힘을 지닌 정치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문국현, 조국,  박근혜, 손학규, 유시민, 문재인, 오세훈이 그가 다루고 있는 인물이다. 이들에 대한 평들 중에 우리가 받아들일 내용이 많다. 물론 우리는 정치를 이들 중심으로 하면 안된다. 인물 중심이 아닌, 바로 우리들 생활을 중심에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인들에게 이야기한다. 아니 우리들에게 이야기한다. 어느 정당, 어느 인물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말고, 진정 우리가 잘 살 수 있는 방법, 즉 민생 현안 중에서 서로 함께 공유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최대공약수를 찾자'(336쪽)고 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사로 함께 할 수 있는 공약수, 그 중에서도 최대공약수를 찾고, 이 최대공약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함께 행동하자고 한다. 그런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강남 좌파의 문제를 정치의 문제에서 교육의 문제로, 아니 학벌의 문제로 끌어온다. 이 학벌이 능력주의로 흘러, 결국 개인의 책임으로 문제를 돌리고 있으며, 학벌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래서 그는 학벌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최근에 이야기됐던 서울대 폐지론보다는 조세정책의 변화를 제시한다. 그는 '입시, 사교육 문제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조세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많이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게 하자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워렌 버핏이 생각났다. 그가 돈을 버는 방식이 내 맘에 들지 않을지라고, 그는 자신은 세금을 너무 적게 내고 있다고, 자신의 세금을 더 많이 걷어 가라고, 자신과 같은 투자가들 중에 세금이 무서워서 투자 안한다는 사람 본 적 없다고 했다.   

부자 감세 운운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참 부러운 일이다. 세금을 통해 소득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면 굳이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 정규직 유무, 그리고 승진 유무가 심하게 차이나고 있지 않은가? 단지 공부하겠다는 열망이 아니라, 이러한 생활의 격차 때문에 대학, 특히 학벌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학벌들이 정치집단 사이에서는 더욱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 이러한 학벌 체제에 균열이 일어난다면 정치 집단에서 작동하는 학벌도 많이 약화되리라고 본다. 

또한 많이 벌수록 세금을 더 내면 능력주의의 환상도 어느 정도 사라질테고, 더불어 사회적 평등도 어느 정도 당겨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대학 가려고 아둥바둥 대는 이유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이니, 강준만의 해결책은 타당성이 있는 제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어느 한 꼭지가 생각이 났다. N극과 S극들이 나와 서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내용. 의도하지 않게 다른 사람과 결합이 되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밀어내는 모습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꼭지다. 

그런데 이 꼭지가 우리나라 정치 현실과 너무도 비슷하지 않은가?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고 이들은 서로를 밀어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서로 잘 결합이 되어 있고, 함께 결합이 되어 있어야 할 진보와 서민들은 서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많이 보이니 말이다. 

우리는 우리들 자신 속에 모두 N극과 S극을 지니고 있다. 특정한 어느 극만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내 안의 극들을 내 스스로 성찰하고, 이를 남들과 소통할 때 조절할 수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소통의 정치, 이를 말로만 하지 않고, 앞에서 이야기 했던 민생의 최대공약수에서는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그게 정치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끼리의 정권 쟁취 싸움, 이권 쟁취 싸움밖에는 안된다.

 

강남 좌파를 읽으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란 말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 엘리트들, 소위 사대부란 사람들, 양반이란 사람들의 최종 목적은 평천하다. 그렇다면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순차적인 개념일까? 아니면 병렬적인 개념일까?  

꼭 수신을 해야 제가를 하고 치국을 하고, 평천하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치국, 평천하를 하면서 수신과 제가를 함께 할 수 있을까? 

강남 좌파란 치국, 평천하를 하겠다는 사람이 수신, 제가에서 실패했을 때 들을 수 있는 말 아니던가? 

그렇다고 수신하고 제가한다음에 치국을 할 수 있을까? 이것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만든 것이 치국을 할 때, 제가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감시기구를 작동시키는 것 아니겠는가? 수신이야 치국, 즉 정치활동을 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말로 대신하면 될테고 말이다. 

자신의 정책 실패를 성찰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정치가, 이는 수신에 성공한 정치가이리라. 그리고 가족 비리가 생기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기구를 작동시키는 정치가 이는 제가에 성공할 가능성이 많은 정치가 이고...이들은 자신이나 가족의 문제로 발목을 잡히지 않을테니, 더 나은 정치를 할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강남 좌파란 말대신 정치 엘리트, 아니면 그냥 엘리트들이라고 썼으면 좋겠다. 엘리트란 말이 외래어라서 좀 그렇다면 지식인라고 하자. 어짜피 정치가들은 이들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는가? 물론 진보 정당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소위 지식인들이 아닌 사람들이 정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이미 진보 정당에서 주요한 위치에 들었을 때는 일반 민중이 아닌 지식인처럼 행동하고 사고한다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지식인으로 이야기해도 별 무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말이 아니지 않은가? 민중과 유리된 지식인이 아니라, 지배층에서도 지식인이 나오고, 민중에서도 지식인이 나와야 한다. 지식인은 계층과 분리된 개념으로 생각하면, 또다른 하나의 사회 집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들 지식인이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가 결정되지 않을까? 

그람시의 용어를 빌면 전통적 지식인이 되느냐, 유기적 지식인이 되느냐 하지 않을까? 강남 좌파라는 말이 이 '강남'이란 말 때문에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을 유기적 지식인, 보수를 지향하는 지식인을 전통적 지식인이라고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좌파란 말은 부정적인 의미를 함의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선이 내년이다. 많은 정치적인 논쟁들이 일어나고, 많은 지식인들이 정치에 참여할 것이다. 이 때 나는 어떤 입장을 지닐 것인가? 무엇이 정말 많은 사람을 위하는 것인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의 표지에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다'란 말이 있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모든은 아니다. 이 모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치인들이 유기적 지식인이 될 테다. 그리고 그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도 좋아질테고... 

우리는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가 되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을까?  

'강남'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하는 모습, 이건 허황된 꿈에 불과할까?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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