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 두려움에서 걸어 나온 동성애자 이야기
동성애자인권연대.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기억은 왜곡을 동반한다. 인간의 기억이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억이 자신을 만들어가고 이끌어 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크스가 했다는 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은 '인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시한다'였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서 '문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잘못된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회에서 해결해야 할 어떤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 문제라는 말은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는 말은, 이미 제기된 문제에는 해결방법이 내포되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런 문제가 있어라고 말을 한다면 이미 그 해결책은 문제 자체에 들어있다는 말이다. 

문제를 인식한다면 그 해결책에 대해 고민한다는 얘기가 되고, 해결책을 고민한다면 분명히 문제는 풀리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언제, 어떤 방식으로 풀리느냐가 문제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문제 중에, 이번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해결책이 있어야 하니, 이 책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 노력한 사람들과 인터뷰한 인터뷰집이다. 

"후천성 인권 결핍 사회를 아웃팅하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잘 붙인 제목이다. 후천성이라는 말에서 인권결핍은 선천적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히 고칠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고, 인권결핍 사회라는 말에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권에 무지한지를 생각하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아웃팅하다라는 말에는 인권이 결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수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인권결핍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너희들 이래라고 알려준다는 의미다. 

'아웃팅'이란 말은 '커밍아웃'이란 말에 비하여 폭력을 내재하고 있는 말인데, 이는 다수가 소수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쓰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 말은 반대로 소수가 다수를 고발하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제목 자체에서 상당한 도전의식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여기가 인터뷰어인 지승호가 이야기를 잘 이끌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부를 해야 할텐데, 공부뿐만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할텐데, 이 책을 읽으면 지승호라는 인터뷰어가 상당한 이해를 지니고 성소수자를 대하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수자로 분류되는 집단이 여럿 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차별을 받는 집단이 동성애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신을 감추고 살다가 나는 이런 성적 지향을 지닌 사람이야 라고 자신이 자발적으로 밝히면 그것은 커밍아웃이고, 남들이 넌 이런 성적 지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잖아 하고 밝히면 그건 아웃팅이다. 

커밍아웃은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고 인정해 달라고 하는,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아웃팅은 넌 우리랑 다른 사람이야라고 차이를 차별로 전환시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이 책의 부제가 '두려움에서 걸어나온 동성애자 이야기'이듯이 이 책은 이들의 커밍아웃이라고 할 수 있다.

'종로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시작으로 인터뷰는 시작된다. 감독과 배우가 성소수자이고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란다. 난 아직까지 보지 못해서 뭐라 얘기는 못하겠지만, 일반 극장에서도 상영할 목표를 지니고 있다는데,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상영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인권결핍 사회이니(나 역시도 적극적인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상영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은 지금 이 시점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한참 뒤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서 종교에서의 성소수자문제릉 이야기하고 있다. 뭐 종교라고 폭넓게 얘기하기보다는 기독교라고 얘기하는 편이 옳겠다. 사랑의 하느님이 왜 소수자를 그리도 핍박하는지, 과연 성경에는 동성애자를 사탄의 무리라고 하는지, 오히려 동성애자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면 더 사랑으로 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성적 소수자를 인정해주는 교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음은 군대에서의 성소수자 문제, 군대는 인권의 사각지대로 알려져 있고, 최근에는 기수열외 등 정말로 후진적인 인권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군대에서의 동성애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군대에서의 동성애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나름 해결책을 모색해가려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후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인터뷰였다. 군대, 참 많이도 고쳐야 한다. 

후천성면역결핍증에서의 성소수자 문제는 잘못된 사실이 유포되어 핍박받는 경우로 보면 된다. 인터뷰이인 윤가브리엘이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이라 이제 그의 주장이 서서히 일반이에게도 알려지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정확한 정보 전달, 그것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임을 우린 명심해야 한다 

여기에 청소년의 성소수자 문제, 한참 예민한 나이에 고민하는 청소년의 문제는 적극적인 관심을 지녀야 한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생각만 하게 해도 많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인터뷰이로 나온 청소년들의 그 발랄함이 이들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또 결혼이라는 제도에서의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는 두고두고 고민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할 일이다. 단순하게 동성이면 어떻고, 이성이면 어때 인정해주자 하고 나오면 다 해결되는데, 아직도 가부장적인 사고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이리라. 서양에서도 이 문제는 아직도 제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어쩌면 국제적인 연대로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동인련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분과의 면담으로 책을 끝내고 있다. 이 면담은 희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결코 어둡지만은 않은, 해결책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느낌을 주면서 책이 끝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정말로 많은 분야에서 이들은 소수자란 이유로 차별을 받고, 단지 차별뿐이 아니라 박해를 받고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성애자이자 남자이자 주류에 속해 있는 나 자신이 정말로 얼마나 이런 면에서는 까막눈인지, 얼마나 결핍된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아웃팅시켜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와 공감이라는 말을 마음 속에 담고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소한 마음으로 공감은 하지 못해도 머리 속으로는, 이성으로는 이해는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를 하려면 마음이 따라줘야 하는데, 공감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기에 못 보고 지나친 것이 너무나 많았음을 이 책이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한 사회의 인권 척도는 그 사회의 소수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으며 지내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에 속하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성적지향이 다른 사람들 등등을 보라. 정말로 인권결핍 사회 맞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문제들을 내 일이 아니라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고 그냥 무시하려 하지 않았던가. 세상의 모든 일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어도,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야라고 이중적인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 우리들의 무관심이 무책임임을 이 책은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그 나름대로 존재의 이유가 있으면, 존재한다는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우리는 외면하고 있지 않았던가.  

적어도 다르다는 이유로 이상하게 보는 눈은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책이다. 

나와 같은 다수에 속한 사람들이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해도 좋고, 뭐 동성애라면 치를 떠는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고, 그리고 자신의 성적 지향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든다. 

다름은 다름일 뿐이다. 결코 이상함이 아니다. 다름을 이상함으로 보는 사람이 이상(異牀)일 뿐이다.  

반복하지만, 인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 제기한다. 따라서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얘기는 해결책이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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