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디자인의 교감 : 비터 파파넥
조영식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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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파파넥.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누구지? 역시 녹색평론은 내게 지금껏 알지 못했던 사실, 또는 사람, 생각 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당장 궁금하다. 디자이너라는데, 어떤 디자인을 했는지, 그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녹색평론에 실린 짧은 글로는 다 알 수가 없다. 검색을 해 본다. 그의 저서가 죽 뜬다. 처음부터 그가 쓴 책을 읽기에는 왠지 망설여진다. 그렇담,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 책자를 먼저 보자는 생각이 든다. 어떤 책이 좋을까? 제목이 맘에 든다. 인간과 디자인의 교감이라.. 괜찮을 듯 싶다. 그래서 책을 집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생각 1. 1960-70년대 새마을 운동. 세상에 새마을이란 이름으로 전통 가옥을 모두 부수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그것도 초록, 빨강 등의 색칠을 해서 마을을 한 눈에 띄게 만들었다. 한 눈에 띈다기보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연에서 이질적인 모습으로 떨어져 나온 건축물이 되고 만다. 이게 산업화를 이룬 마을 디자인이었다. 

생각2. 피맛골이 사라졌다. 종로의 양반들, 왕들의 행차가 있을 때마다 땅에 엎드려야 했던 백성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말을 피해다니는 길을 만들고, 그곳에 자신들의 삶터를 만들었던 곳.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그 곳이,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구나는 감탄을 자아내던 그곳이 없어졌다. 개발을 한다는 도시 디자인이었다. 

생각3. 북촌 한옥마을을 재개발한다고 했었다. 서울에 이렇게 멋있는 한옥들이 남아있는데, 이를 또 개발한다고? 아직도 우리는 먼 과거의 개발 망령에 시달리고 있단 말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러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가. 그런데 개발이라니, 북촌에 살고 있는 한 외국인이 개발 반대 운동을 했다. 한국에서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발해야지 개발해야지 하는데, 외국인이,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왜 개발하냐며 반대운동을 한다. 결국 북촌은 지금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생각4. 개발 열풍으로 콘크리트 밑으로 감춰졌던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아니 재개발되었다. 본래의 청계천을 드러내지 않고, 그 위에 인공 하천을 만들었다. 물도 자연적인 물이 아니라, 전기로 끌어다 쓰는 물이다. 엄청난 물 소비와 전기 소비를 하는 인공하천이 만들어졌고, 이를 청계천의 성공적인 복원이라고 자랑한다. 또 하나의 인공하천을, 정말로 도시다운, 전통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하천을 만들어 놓고 자랑스러워 한다. 콘크리트 하천, 멋진 디자인이다! 

생각5. 어느 유명 호텔에서 한복을 입은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고 했다. 신문, 텔레비전에 오르내리고, 국회에서도 이 일이 문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 복장인 한복이 우리나라 호텔에서 출입금지 복장이 되다니, 이건 전통문화가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 모습을 떠나, 전통을 부정하는, 우리 전통 복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복장이라고 전세계에 공표를 하는 행위다. 전통을 살리되, 현대 감각에 맞게 개선한다는 그런 취지의 디자인이 되어야 하는데, 한글 옷부터, 개량 한복까지 이런 취지의 복장이 많이 나오고 있는 지금, 도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결국 그 호텔은 사과를 했다. 잘못했다고, 잘못 전해진 것 같다고..

조영식이 쓴 파파넥에 관한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그는 전통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하려고 했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계층을 위한 디자인을 하려고 했다. 또한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디자인을 하려고도 했다. 이 책은 이런 그와 하는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쓰여졌다.  

이 가상 인터뷰 중에 한국의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있고, 파파넥의 대답이 있었다. 물론 조영식의 생각이겠지만, 그리고 파파넥이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아서였겠지만, 일본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를 하면서, 한국의 디자인은 잘 모른다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아마도 파파넥이 앞에 든 생각 다섯 가지를 직접 목격했다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디자인에는 정신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하는데,이 정신은 전통, 생태,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따라서 디자이너는 디자인에 관한 기술만을 배우지 말고, 인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을 함께 배워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나라의 이 다섯 가지 일을 디자인의 해악 중의 해악으로 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지금 우리나라는 전통과,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을 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또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디자인을 하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는 파파넥의 말대로 정신이 들어있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말이고, 그래야만 제대로 된 디자인을 하고, 디자이너로서의 책임도 다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을 실천하는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그림을 통해, 그가 디자인한 작품들을, 좋다고 여겨지는 작품들과 반생태적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이 책은, 파파넥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저자 조영식이 자신의 생각으로 재해석해서 가상 인터뷰로 풀어가고 있어 읽기에도 편하고, 부분 부분 생각할 거리도 많아서 좋다.  

작고 읽기 편하지만, 작은만큼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며, 더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읽는 동안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코퍼스웨이트의 "핸드메이드 라이프"란 책을 읽었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같은 즐거움이었다. 그리고 이제석이란 우리나라 광고인도 생각이 나고, 그가 상업광고에서 공익광고로 옮겨가고 있는데, 어쩌면 이 파파넥의 디자인에 대한 생각과 비슷한 관점에서 그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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