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묘에서
- 고 노무현 대통령을 보내며
당신은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 창백한 얼굴과 하얀 옷이
더 이상 가까이 하지 못하게 했다. /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건,
당신을 지키는 경비병들의 무기가 아니라, /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자리였다.
삶과 죽음은 엄연히 다른 세상이기에.
당신의 조국은 / 총칼 앞에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지만,
당신네 사람들은, / 당신을 버릴 수 없어 / 당신의 몸만이라도 가까이 하고 싶어,
당신의 정신만은 놓치고 싶지 않아 / 당신을 이 땅에 머무르게 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 가장 낮은 곳에 있으려 한 당신이기에,
당신네 사람들은 / 당신을, / 대통령이 아닌, 각하가 아닌, / 그저 아저씨라고,
호아저씨라고 불렀다.
난, / 당신의 묘에서 / 당신을 가졌던 당신네 사람들을 / 부러워했다.
우리도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맞고 싶다고. / 당신은 통일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당신네 사람들은 모두가 / 바로 당신이었다. / 통일 베트남. / 그건 바로 당신, 당신네들의 정신이었다.
분단조국, / 여기서 스스로 생(生)을 마감한 / 한 전직 대통령이 있다.
2009년 5월 23일. / 통일도 못 보고, / 지역 통합도 못 보고, /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아니, 어쩜 세상이, 권력이, / 그를, / 이 땅에서 떠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우린 그를 바보라고 불렀다. / 그 역시 낮은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는 내 이웃의, 언제나, / 만나 얘기할 수 있는, /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는 ‘바보’였다. / 바보와 아저씨의 거리. / 그것이 당신과 노무현의 차이였으리라.
외눈 세상에 두 눈이 바보가 되는 / 우리네 세상은, / 당신네와 달랐다.
그리고 우린 그를 이렇게 보내고 말았다. / 바보 같이, / 바보 노무현을.
보내고 나서야 그가 아저씨임을, / 우리와 함께 숨 쉬었던 / 당신과 같은 아저씨임을,
바보는 오래도록 / 우리 마음에 남아 있음을 / 바보 같이 / 이제서야
그의 묘에서 당신을 / 보고 있다.
유시민이 대신 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