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시대현실 - 염무웅 평론집
염무웅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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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염무웅의 문학평론집이다. 소위 386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486으로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염무웅은 백낙청과 더불어 친숙한 평론가이다. 마치 60년대에 이어령이 친숙한 평론가이듯이 말이다. 

소위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은 전문가에 해당한다. 바둑으로 말하면 프로기사가 되고, 무협으로 따지면 무림고수에 해당한다. 따라서 우리가 평론가가 아닌 이상 평론집을 읽는 행위는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도전하는 일이고, 이제 갓 무술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이 이미 일가를 이룬 고수에게 대련을 신청하는 일이 된다. 

시작부터 불공정한 게임이 된다. 그러나 이 불공정한 게임은 즐거운 게임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미 평론집 읽기 행위는 자신도 어느 정도 문학에 대해서는 해석을 할 능력이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다. 이 자신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길 수 없듯이, 또 갓 무림에 입문한 사람이 고수를 이길 수 없듯이 고수들의 현란한 기술에 초심자는 혀를 내두룰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금방 기가 죽는다.  

하지만 기 죽어서는 안된다. 이미 시작부터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평론가는 그 작품들을 다 읽고 자기만의 관점에서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문학을 해석하지만, 초심자에게는 아직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초심자가 평론가가 비평하고 있는 작품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작품들을 다 읽기로 하고 덤벼든다면, 이미 초심자는 평론가를 따라갈 수가 없게 된다. 그 작품을 읽고 생각을 다듬는 동안, 평론가는 다른 작품들을 읽고 자기만의 글쓰기를 하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 우리는 스승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어리석은 제자가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우리를 범하지 않기 위해, 또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배에서 내리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평론가의 해석을 따라가지 말고, 그가 어떤 관점에서 문학작품을 바라보고 해석을 하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의 해석방법이 내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보고, 나만의 해석방법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조언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된다. 염무웅은 문학을 사회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자, 나는 작품을 사회와 관련지어 볼 것인가, 아니면 사회와는 전혀 관련짓지 않는 그 무엇으로 작품을 해석할 것인가. 

나는 염무웅의 관점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그의 해석 전부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작품을 사회와 관련지어 보더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전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김광섭, 임화, 팔봉 김기진, 신동문, 그리고 최하림, 이성선, 김영무를 다루고 있는데, 이성선, 최하림, 김영무 부분이 좀 낯설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앞 부분의 작가들은 치열하게 현실과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고 볼 수 있는데(김광섭은 후기시로), 이 세 작가들은 자연을 노래하는 시들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물론 자연에 의탁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든지, 관조하며 자연을 노래하든지, 자신과 하나된 자연을 노래했겠지만, 앞의 시인들과는 이질적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이들을 3부에 속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2부에서는 고은과 신경림,조태일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들은 다르면서도 비슷한 시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 작가의 경험과 시인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어 읽기에도 좋았다. 개인적으로 신경림 시인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경림 시인 부분이 가장 좋았다고 할까.

3부에서는 시집에 대한 해설로, 소개된 시집을 다 읽으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저자가 어떤 관점에서 시를 바라보고 있나를 중심으로 살피면 나름대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 마음에 끌리는 시집이 있으면 한 권 사서 읽어도 좋고. 

4부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이라는 것이 문학사에 살아남은 몇 소설을 빼고는 대부분 잊혀진 소설이라서, 시중에서 쉽게 구하기 힘든 것도 많고, 또 읽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려 우리가 작품의 해석에 결코 저자를 따라갈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게 된다. 김정한, 송기숙, 황석영이야 문학사에서도 언급이 되니 그렇다쳐도, 95년의 소설풍경1,2,3,4와 성석제, 최인석의 소설집은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 그 많은 소설 속에서 지금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니, 이 평론들은 지금의 현실에서 잘 다가오지 않는다. 나는 이 작가들의 소설집을 읽었는데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많은 세월이 지났다.  

시와 달리 작품을 전혀 모르고 평론을 읽는다는 것은 글자는 글자대로 생각은 생각대로 놀고, 자칫하면 저자의 생각에 백기를 들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2010년 말에 출간된 책에 1995년의 소설평이 들어가다니, 좀 당황스러웠다.  다만 염무웅이 지금까지 견지하고 있는 일관된 생각, 문학관이 지금도 유용하고 작품 분석에 적용되기에 이 글들이 이 책에 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부는 남북문학, 서양문학과의 관련 글들이라, 지금도 유효하고, 생각할 거리가 많다. 둘 다 진행형이지 않은가. 이는 저자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는 부분이니,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게 읽으면 좋다. 특히 서양문학과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 영문학, 독문학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말은 외국문학을 전공하려는 사람들이 심도 있게 고민해봐야 할 문제거리이다.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글들이 쉽게 읽힌다. 역시 고수는 다르다. 글을 결코 어렵게 쓰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손에 잡으면 주욱 읽게 된다. 특히 7,80년대 대학에서 문학에 대해서 고민을 한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향수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문학평론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문학평론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구실도 하는 책이다.  

한 번 염무웅과의 문학작품을 사이에 둔 불공정 게임에 참여해보자. 불공정한 게임이지만 즐거운 게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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