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 시인 김규동의 자전적 에세이
김규동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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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동 시인은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우리나라 원로시인이다. 아니, 시인에게 원로란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원로란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 붙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강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인에게 은퇴가 어디 있단 말인가. 

시인은 젊었을 때도 나이 들었을 때도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시를 쓴다. 그 시세계가 변해가기도 하고 평생을 유지하기도 하지만 시인은 언제나 세상을 새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이 책은 시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어린 사람들에게 차분히 들려준다는 느낌을 준다. 

이는 아마도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요'라는 말 때문일텐데, 이 말이 친숙하게 들리고, 마치 곁에서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주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근대를 살아온 시인이 자신의 삶과 당시 세상의 모습을 들려주고 있다. 

일제시대, 공부에 흥미가 없던 소년이 문학작품을 읽고,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자연스레 공부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는 과정이 1부에서, 공부하는 대신 원없이 놀았던 것이 시인을 더 시인답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2부에 펼쳐지는 일제 말기 시인이 함흥고보에 다니던 시절 이야기는 일제시대에 우리 민족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일제시대라고 일본인은 다 나쁘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이 좋다. 일제시대, 함흥고보에서 한문을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 이야기는 민족, 국가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이것은 월남하기 전에 만났던 유채룡이란 분의 이야기에서 알 수가 있다. 

3부에서는 월남한 뒤, 6-70년대까지 시인이 겪은 일을 다른 시인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박인환, 김수영, 천상병, 그리고 잘 모르는 박거용이라는 사람까지. 특히나 전쟁통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시인이 직접 겪은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어, 지금까지 잘 몰랐던 일화가 나오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시인의 시가 곳곳에 인용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시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이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가 막히면 앉아서 쉬어라 

 

쉬다 보면 보이리 

길이. <돌파구를 찾아서> 이 책 42쪽

할 때까지 하고, 그러나 막막할 때, 그 땐 잠시 쉬자. 그러면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무조건 나아간다고 해서 길이 보이고, 길이 되지 않는다. 이 단순한 진리를 이 시에서 이렇듯 잘 표현하고 있으니.  

그래, 시인은 그래서 가끔 쉬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꾸준히 걸어왔으리라. 그 걸어온 과정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하나 끄집어 낸 글들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이리라. 

분단의 비극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나이들어 버린 시인이, 고향 땅을 밟고 고향에 있는 느릅나무를 만나는 날,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 책은 단지 김규동이라는 시인의 자서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인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긋나긋하게 해주고 있다. 시 쓰고 싶은 사람, 문학 하고 싶은 사람, 그리고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궁금한 사람, 한 번 읽어보라. 

어렵지도 않고, 술술 읽히는 이 책, 시인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덧말 

올해 2011년 9월 28일 김규동 시인이 별세했다. 그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하늘나라에서는 가보고 계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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