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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 아리랑 -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
김성동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에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논쟁이라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인 비난이었고, 결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내용이 고쳐지게 되었다.
진보에 관한 내용이 문제가 되었는데, 이 교과서에서 다뤄진 내용은 기존 학계에서 이미 논의된 내용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이미 통설로 굳어진 내용조차 교과서에서 다루지 못 하게 한다면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과, 완전한 좌익이라고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김성동의 글, 소설 만다라에서 충격을 받고, 좋아하게 되었는데, 요즘은 소설가로보다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잊혀진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통설로 상식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을 다시 밝혀내는 사람으로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녹색평론에 연재하는 글들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현대사 아리랑이라는 이 책, 작은제목이 '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는가? 현대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인물을 제법 알고 있다는 나에게도 생소한 이름이 많았으니, 현대사를 고등학교까지만 배운 사람에게는 모르는 인물이 태반이리라. 그만큼 많은 인물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고 해야 한다.
김성동은 이들을 하나하나 불러낸다. 그들이 누구인지 한 번 살펴보자.
박헌영, 김단야, 이재유, 이관술, 김삼룡, 이주하, 정태식, 이현상, 박세영, 이승엽, 김재봉, 강달영, 권오설, 이준태, 홍증식, 유영준, 정칠성, 김명시, 김복진, 허하백, 박진홍, 김태준, 여운형, 김원봉, 김두봉, 무 정, 이동휘, 최창익, 백남운, 김성숙, 최익한, 조봉암, 고준석, 홍명희, 조명희, 이기영,한설야, 이태준, 조 운, 박승극, 이동규, 김순남, 임 화, 이용악, 유진오, 이강국, 최용달, 박문규, 박영발, 하준수, 김제술, 정순덕
한 꼭지씩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 인물들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이 정도 인물보다 더 많아야 하겠지만, 작가는 더 쓰려고 하다가 먼저 이들만을 썼다고 한다. 아마도 이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올 거라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도 하고,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도 한다. 이 말들에 의하면 역사란 과거에 존재했던 사실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입장에서 의미를 지닌다고 판단하는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역사적 기록이 앞으로도 역사적 기록의 정설이란 생각을 하면 안 되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의 사실들을 재해석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의미있는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겨 역사의 기록이 변화하게 해야 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보수의 입장에서 기록되어진 역사를 진보의 입장도 반영하는 역사로 변하게 하려면,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사실들에 대한 기록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없게 되었을 때는 이미 때가 늦어버리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역사도 좌나 우, 어느 한 쪽의 역사일 수 없다. 지금껏 오른쪽으로 너무 굽었다면 이제는 왼쪽으로 굽혀서 중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지 않을까 한다.
덧붙이는 말 : 우리말(토박이말)을 너무도 잘 사용해서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기록을 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우리말(토박이말)에 대해 우리 자신이 너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너무도 천대했다는 사실을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들만큼이나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책의 뒷부분에 꽤 많은 토박이말들에 대한 풀이가 있어서 읽어나가기는 다른 책들보다 조금 힘들지 모르지만 읽고 나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으니(잊혀진 인물들에 대한 정보, 다양하고 아름다운 우리말) 한 번쯤 읽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