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공부
홍윤숙 지음 / 분도출판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이 시집을 산 이유는 우습게도 단 하나의 시 때문이었다. 

실소(失笑)라는 시. 

한평생 걸려서 / 수수께끼 하나 풀었습니다 

"먹을수록 배고프고 허기진 것 / 나이 먹는 것" 

2연 4행으로 이루어진 이 짧막한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이 시가 어느 시집에 있나? 찾아보니 마지막 공부라는 시집에 있다. 

마지막 공부라? 제목에서 이미 시인은 나이가 꽤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부라는 말을 쓰니, 이 사람은 나이 먹어서도 치열하게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이 시집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도 있고,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잘 드러나고, 죽음을 앞두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나 하는 관조적인 자세도 나타난다. 이 시집의 대부부분 시에 붙은 부제(작은 제목)가 놀이, 목숨 혹은 원죄이다. 결국 삶이란 태어난 원죄로 목숨을 이어가지만, 그 삶들은 놀이라고 생각하고 지내면 더욱 풍성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천상병 시인이 그의 시 귀천에서 우리의 삶이 소풍이라고 비유했는데 그와 유사하다고나 할까. 

시집에서 시인이 가장 애착을 지니고 있는 시나 구절이 제목이 된다면 이 시집에 수록된 마지막 공부는 이 시의 핵심이 되리라. 마지막 두 연 

마침내 알리라 / 나를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 그리고 눈뜨고 귀 열리리라 / 삶은 끝없이 꾸는 꿈이고  죽음은 비로소 깨어나는 현실임을 

그날을 위해 날마다 / 은사시나무 가지 끝에 부는 바람 / 가슴으로 새기며 / 남모르는 마지막 공부에 / 밤이 깊다 

그래. 이 시는 무겁다. 인생의 마지막 공부란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시의 무거움은 아직은 젊은이들에게 다가오기 힘들다. 나이들어가면서 세상의 허무를 느낄 때에서야 이 시가 가슴에 와닿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시를 읽으면 가슴 한 켠에서 삶의 소중함이 솟아나올 수 있다. 죽음은 곧 삶의 다른 이름일 따름이니까. 

그래서 나는 실소란 시가 좋다. 우리는 나이먹으면 더욱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잃어가는 것이 많다는 시. 그것을 웃음으로 넘기는 시. 

시란 언어를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덜어내어 더 덜어낼 것이 없을 때 그 때서야 울림이 있는 언어로 다가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인의 시들은 길지 않아 좋다. 그렇다고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욱 읽을 필요는 없다. 생각날 때 어느 한 쪽을 펴서 읽어보면 마음에 와닿을 때가 있다. 그게 시집의 효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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