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색깔의 표지가 있는 시집이다. 북펀드에 응모했더니, 내게는 초록색 바탕의 시집이 왔다.
표지에 있는 네 가지 색깔, 팔레스타인 국기에 있는 색깔이다. 내가 알고 있는 국가의 깃발이 몇 개 되지 않지만, 왜 세 표지 중에서 랜덤으로 보내줄까 했더니, 이것이었다.

팔레스타인 국기에서 따온 것. 그렇게 시집은 표지에서부터 팔레스타인에 응답하고 있다. 시집 제목을 보라. '(팔레스타인을 향한/위한) 응답의 시' 아니던가.
괄호가 마음을 울렸다. 괄호, 직접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멀리서나마 마음으로나마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혼자가 아니라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고, 당신들에게 응답하는 존재들이 세계 곳곳에 있고, 멀디 먼 한국에도 있다고 하는 듯한, 괄호. 그리고 응답.
이 시집을 읽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스라엘? 지금은 나라 이름이지만 사람 이름이기도 했는데, 누구였더라? 오래 전에 본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검색했더니, 야곱이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었다더라.
성경 (대한성서공회가 번역한 개역한글판 성경전서-1995년-) '창세기 32장 28절에 보면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라고 나온다.
이 야곱이 누구냐?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인 사람 아니던가. 여기에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니, 세상에 무서운 것이 없는 민족이라고 하겠다.
선민의식, 그것을 지니게 된 것이 이 야곱, 이스라엘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은데, 그간 서양의 역사에서는 '예수'를 팔아넘긴 민족이라고 해서 온갖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지만 그들이 지닌 이 선민의식을 버리지 않았으니...
현대에 들어 남들이 살고 있던 땅을 점령하고, 공존하기보다는 또다시 이기려고 점점 팔레스타인을 침략해 땅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정착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으니... 단순한 정착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을 동반한 정착이니...
또 이기려는 것인가? 누구를? 강한 자가 아니라 약자를,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사람들을 물과 식량부족으로 스스로 나가게 하려는지, 저항하려는 사람을 군인, 민간인,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폭격으로 죽게 만들고 있으니...
그럼에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유대인에 대한 원죄의식이 있어서인지, 나서지 않으려 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당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을 학살하고 있는데도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아니, 침묵하지 않는데, 많은 언론들이, 더욱 강한 자들이 다뤄주지 않고 있다.
그들의 입을 막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귀를 막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참상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 못한 시인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직접 행동을 할 수 없더라도 조그마한 목소리라도 보태려 한다. 아니, 보태야 한다. 그래야 이 참상이 멈출 수 있으니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응답, 그것이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할지라도 팔레스타인이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겐 할 수 있다. 또 더 큰 비극을, 참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하다. 응답이... 시인들이 침묵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미약한 목소리나마 내려고 하는 것. 이런 시인들의 응답이 저 멀리 가 닿기를... 직접적이 아니더라도 그 마음이 그들에게 전해지기를...
시인들이 이런 응답을 할 때 나같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응답은 무엇일까? 지금 할 수 있는 일, 이런 시인들의 응답에 나 역시 응답하는 것. 시집이 널리널리 읽히도록 하는 것. 팔레스타인의 진실이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것.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내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 진정으로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배제가 아니라 포용으로 사용하기를 바라는 것.
현대에 과학기술은 인류를 불멸로까지 이끌려고 하는데, 그러한 불멸로 가기 전에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어나가면 안 되지 않겠는가? 최첨단 무기들이 사람을 죽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평화를 향한 외침. 그것이 우리의 응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집을 읽으며 팔레스타인에 응답한 시인들에게 고맙단 마음이 들었다. 이젠 시인들만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응답할 차례라는 생각이 들고.
이 시집에서 '못 묻는다'는 송정원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다녀올게만 있고 다녀왔어는 없는 무수한 하루가'(145쪽)... 이런 현실이 지금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세상에, 이 땅에는 '안녕'이 없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 '안녕하세요'를 하기 힘든 상황. 그러니 시인들이 나설 수밖에. 팔레스타인에 응답할 수밖에.
이 시집이 응답하는 시라면,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들이 있다. 그 책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많겠지만, 내가 읽은 책으로는 이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