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집을 읽는다. 소설보다 짧은 시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더 긴 시간이 있을 때에야 시집에 손이 간다.


  짧음을 짧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길게 느끼기 위해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찾는 시간이 있어야 하기에. 그럼에도 늘 찾기에 실패하고, 도대체 시인은 무엇을 숨겨놓았을까 생각해야 하기에.


  이번에 고른 시집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다. 하긴 시인을 모르는데, 선택을 하려면 여러 조건을 따져야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제목이다.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비열한 거리' 중에서. 59쪽) 라니. 이만큼 현대인의 생활을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함께 산다고 하지만 현대인들은 각자 살고 있다. 그 각자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듯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을 더 의식한다.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서 살아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시인이 제목이 된 구절이 있는 시에서 '비열하게 이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 '예스'라고 말해줘야 한다-고'('비열한 거리'에서. 59쪽)고 표현한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했다.


자신이 아니라 남이 바라보는 자신으로 살아가려 하는 것. 현대인의 삶 아닐까. 그만큼 남을 의식하면서 산다는 것인데... 그런 삶을 '기하학적 실수'란 시에서 발견했다.


       기하학적 실수


모든 사랑의 체위는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감각이다.

그걸 알면서도

사랑을 나눌 때

나는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체위를 요구하지 않았다.

말없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그게 내 사랑의 비극이고

내 사랑이 실패한 이유였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어떤 체위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

늘 꿈꾸어왔던 나만의 체위는

내 마음속 깊이깊이에만 간직해두고

척추를 타고 흐르는 파르르한 사랑의 경련에만

전율했다는 것.


모든 물이 다 증발하고 난 뒤에 남는 소금처럼

사랑의 체위야말로 그 사람의 유일한 진실임을

모른 체하고 모른 체했다는 것.


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 33쪽.


이 시를 보면 사랑을 나눌 때조차도 자신이 아니라 상대를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주체로 서지 못하는 사람에게 사랑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 결국 '비열한 거리'에서 말하고 있듯이 이러한 관계는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된다. 마찬가지로 '예스'만 하는 삶은 상대와 하나가 될 수 없음을 뜻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헤미안 광장에서'란 시에서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보헤미안 광장에서


갑자기 내리는 비

그 비를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우산들


그러나 우산은 지붕이 아니다

아내 있는 남자가 남편 있는 여자가

몰래 잠깐 피우는 바람 같은 것이다


갑자기 내린 비가 멎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러니 사랑을 하려거든 

진짜 돌이킬 수 없는 사랑을 하려거든

한 지붕 아래에서 하라


갑자기 내린 비는 금방 지나가고

젖은 우산에 묻은 빗방울들은

우산을 접는 순간 다 말라버린다


김상미,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문학동네. 2017년.40쪽.


이 시에서 우산이 상대에게 맞춰주는 사랑이라면, '한 지붕 아래에서 하는 사랑'은 나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 또한 인정하는, 다르면서도 함께하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한 지붕 아래서 우리는 함께 밥을 먹으며 살아가게 된다. 희노애락을 함께 겪으면서... 오로지 상대에게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또 상대를 나에게만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따로 또 같이 사는 장소로서의 한 지붕 아래, 그러한 곳에서 하는 사랑은 자신을 주체로 서게 하고, 상대 역시 주체로 서게 하는 사랑이지 않을까 한다.


이런 곳에서 먹는 밥,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주는, 또는 사랑을 지속시키는 '성기'와 같지 않을까. 하여 시인이 '밥은 삶의 성기다'(밥의 힘'에서. 96쪽)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여 이 시들을 읽으면서 상대의 눈에 비친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당당하게 살 때에야 비로소 상대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이 때 먹는 밥이,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한 것과는 다르지만, 두 시와 연결지으면, 삶의 성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식구(食口)라는 말. 사랑의 지속. 그것 또한 밥심아니겠는가. 밥심은 곧 사랑이다. 주체로서의 당당한 사랑. 이런 생각을 하게 한 시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