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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불편한 진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6월
평점 :
제목이 자극적이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반론이라고 여기는 제목이다. 불편한 진실이라니...
그렇다면 한글에 대해서, 세종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진실이 아니었던 말인가? 이런 주장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설득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자료를 살펴야 한다. 한글의 창제과정부터, 창제된 이후에 한글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주로 누가 사용했고, 남아 있는 기록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한글에 대한 진실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이 창제된 지 600년이 되어 간다. 1443년에 창제했고, 1446년에 반포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니 반포한 년도로 따져도 한글은 580년이라는 세월을 우리 곁에 있었다. 그동안 한글에 대한 연구도 많았고...
하지만 한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당시에 인쇄술과 종이의 문제다. 금속활자가 있었다고는 인쇄를 나라에서 관리를 했기에, 누구나 인쇄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그것을 찍어낼 종이는 많지 않았던 시대 아니던가.
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읽다보면 종이가 없어서 이면지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러한 이면지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울가에서 모래에 쓰던지, 아니면 바위에 글씨를 썼다고 하지 않던가. 정보를 장악한 국가가 정보를 취사선택해서 인쇄해서 유포하느냐, 인쇄하지 않느냐를 결정했으니, 한글로 인쇄된 종이가 많이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였다. 근대에 들어서도 문맹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가. 조선시대에는 문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수시로 문서를 주고받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인쇄 역시 대량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가 겪었던 전쟁이다. 한글 창제 이후에 겪은 큰 전쟁만 해도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일제강점기와 해방이 되고나서 벌어졌던 전쟁까지.
대체로 전쟁은 많은 기록을 없앤다.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할 때에 기록물까지 챙기기는 힘들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벌어졌던 많은 전란으로 기록들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 몇 안 되는 한글 기록들이 사라진 것.
여기에 그러한 기록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근대 이후의 삶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먹고살기 바빠서 불쏘시개로 쓴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국가에서 편찬한 기록물들이야 철저하게 관리를 했겠지만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경우), 또 권세가들에서, 나름 전통있다고 자랑하는 집안에서는 자신들의 문집을 보관했겠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은 그러한 기록물을 보존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쓴 글들이라야 주로 계약에 관한 사항이거나 개인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편지글들이었을 테니.
이런 기록물의 제약을 염두에 두고 한글에 대한 논쟁을 살펴야 한다. 당연히 지금 우리가 살필 수 있는 자료들은 국가의 공인을 받은 기록물들이 많고, 명문가라고 할 수 있는 집안들에 전해져 내려온 기록물들인 경우가 많다.
저자가 살피고 있는 기록물도 그렇다. 그런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주장은 제목에서 제시한 것처럼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다.
훈민정음에 세종의 서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서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큰 차이는 발생하지 않는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서문을 읽으면 세종은 백성을 가엾게 여긴 것이 맞다. 그들이 편리하게 쓰도록 한글을 만들 생각을 한 것도 맞다. 이 점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제목을 단 저자도 인정한다.
다만, 창제 이후의 과정에서 백성들을 위한 문자가 그들에게 다가갔느냐, 또한 그들이 편리하게 썼느냐에 대해서는 여러 자료들을 살피면서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부민고소법(部民告訴法)'이라고 한다. 지방 수령이 잘못했을 때 그 고을의 사람들이 수령을 고발하는 제도. 조선 초기에 이 제도가 살아있었다고 하는데, 이 법이 폐지된 때가 바로 세종 때라고 하는 것.
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펼치게 하려면 수령들의 잘못을 한글로 적어 호소하는 법을 시행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법을 폐지했으니, 어떻게 백성들이 자신들의 뜻을 쉽게 펼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점을 들어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한글을 사용한 사람들이 과연 일반 민중이었을까? 오히려 사대부라고 하는 양반들이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 여러 자료들을 인용하면서 이 역시 '불편한 진실'이라고 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를 구체적인 사료(史料)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불편한 진실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은 당연히 양반층이 많았을 것이다. 왜냐? 이들에게는 시간이 많았으니까. 또한 이들은 읽고 쓰는 일이 생활이었으니까.
반면 민중들은 먹고살기 바빴다. 글을 배워 읽고 쓸 시간이 거의 없었다. 하루하루 노동하면서 사는 사람들, 그들이 한글을 익힐 여유가 있었을까? 결국 한글에 얽힌 불편한 진실은 세종의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아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민중들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게 노력해왔는가를 살피는 일이다. 소수의 집권층이 자신들은 경제적 부와 정치 권력, 그리고 문화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삶을 받치고 있는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음을 문제삼아야 하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훌륭한 문자로 누구나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추어졌으나, 사회제도로써 그것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 이것을 세종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종이 살았던 조선 초기, 왕권이 막 강화되기 시작한 때, 세종은 한글이라는 누구나 익히고 쓸 수 있는 문자를 선물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그 한글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가는 후대의 몫이지 세종의 몫은 아닌 것이다. 물론 후대 왕들이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조선은 왕조 사회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왕-사대부-양인-천민으로 구성된 신분제 사회에서 문자를 익힐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집단은 사대부 이상이었다. 그것이 경제가 발전하면서 양인들도 여유가 생기게 되니, 여항문학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에게도 문자의 필요성이 대두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천민들도 삶에 여유가 생기면 문자를 익히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이때 한글은 그들에게 배우기 쉬운 문자로 다가갈 수 있다. 아니, 다가갔을 것이다. 그러니 1894년에 한글을 나라의 공식 문자로 선포할 수 있었던 것 아니었을까?
즉, 한글은 처음에는 양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백성들에게로 다가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세종 당대에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한글이 있었기에 민중들이 점차 문자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로 사대부(양반)층에서 한글을 사용했다고 하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 그 쓰임이 어떠했는가를 살피고 있어서,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살피는데 도움이 된다. 한글이 꾸준히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배우기 쉽고, 우리 말을 문자로 표기하는데 좋은 문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오히려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저자의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한글 창제 이후, 한글의 쓰임을 알고 싶으면 꼼꼼하게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