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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나이 묻는 사회'
우리 사회에 딱 맞는 말이다. "너 몇 살이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이!" 이런 말을 많이 쓰는 사회 아니던가.
이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쌍둥이에게도 위아래를 정하는 나라가 이 나라니, 한 해, 두 해 이상 차이가 나면 어떻겠는가.
나이에 따라 철저한 위계를 따지던 나라에서 이제는 그것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최근에 듣기로는 대학가에서도 학번에 따라서 너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를 따져서 형-누나 한다고 하던데... 적어도 예전에는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면 같은 학번은 그냥 친구였는데...
이렇게 같은 학년에서도 나이를 따지는 사회이고, 학년이 다르면 철저하게 위-아래를 구분하는 사회가 바로 우리 사회니, 나이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학년은 넘을 수 없는 벽이 되는 사회, 고작 한 해 먼저 학교에 입학했다고 마치 윗사람이 된 양 행세하게 하는 학교라니... 학교의 이런 위계질서를 12년 받고 나면 자연스레 나이에 따른 위계가 고착되지 않겠는가.
단지 나이가 많은 사람을 존중하면 그것은 좋다. 그런데 존중을 넘어서 위-아래를 구분지으려 하니 문제다. 또 그 나이 대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생각하면 다른 나이 대의 사람들이 그것을 침해할 수 없다고도 여기기도 하고.
대표적인 예가 저자도 언급하고 있지만 교통약자석 아닌가. 말 그대로 교통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좌석인데, 예전에 '노약자석'이라고 노인들의 전용 좌석이라고 착각해 다른 사람들이 앉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것처럼 얘기한 때가 있었다.
노약자라는 말에도 노인이라는 말과 약자라는 말이 합쳐져 있는데,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데, 노인만의 자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어서 이제는 '교통약자'라는 말로 바꾸었는데도 여전히 편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편견이 언어에 반영이 되면 멸칭이 된다. 특정 세대를 비하하는 말이 쓰이게 되는데, 이것은 의식하지 않더라도 세대 간에 담을 쌓는 결과는 낳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각 세대를 비하하는 멸칭을 보여주고 있는데, 어떤 세대도 이러한 멸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런 멸칭들이 버젓이 쓰인다면 세대 갈등이 내면화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멸칭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이 멸칭이 특정 세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대에 쓰이고 있다고 하니, 이것 참 문제다.
세대가 무엇인가? 누구나 한번은 거쳐야 하는 시기 아닌가. 사람이라면 모두가 겪어야 할 그런 시기들을 비하하면 결국 자신을 비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세대라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고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한다. 관계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서로 부대끼면서 만들어 갈 수밖에 없다.
만나야 이해든 뭐든 할 수 있으니, 세대를 가르거나 또는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하여 저자는 '노 키즈 존'이나 '노 시니어 존'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어떤 공간에서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것은 연령 차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인권을 무시하는 행위고, 이런 행위가 일어나면 다른 차별도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특정 세대를 배제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 된다. 다양함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듯이 각기 다른 세대가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이렇게 서로가 어울리는 사회라면 늙지 않으려는, 젊음을 유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될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질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나이를 받아들이고, 그 지점에서 다른 세대들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려 할 것이다.
연령차별주의가 낳은 멸칭 문화. 이것은 하루바삐 사라져야 한다. 지금은 많이 순화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특정 세대를 겨냥해 쓰고 있는 멸칭들,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