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는 어디서 태어나는가
신시어 밀러 이드리스 지음, 조인석 옮김 / 동아시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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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극우가 세력을 얻고 있다. 보통 좌와 우로 나눌 때, 좌는 과거나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에 미래에는 과거-현재가 아닌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이라 하고, 우는 과거-현재가 만족스럽기에 과거-현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 또는 집단을 말한다.


그런데 극우라고 하면 문제가 좀 달라진다. 물론 극좌도 마찬가지다. 극단으로 치우치면 문제가 생기는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허점이 있고, 이 허점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를 이룬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인간인데, 그런데 극단으로 치우치면 나는 허점이 없는 존재가 되고, 상대는 허점이 많은 존재가 되니,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즉, 나에게 방해가 되는 존재로 상대를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누가 말했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사회에는 좌도 있고 우도 있다. 이런 좌우가 서로 공존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다. 그렇게 인간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았는데, 이는 서로가 살 만하다고 느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살기 힘들다고 할 때 원인을 찾기 시작한다. 자신에게서가 아니라 남에게서. 그러면서 남을 배척하기 시작한다. 저들만 없었다면, 또는 없으면 내 삶이 더 나아질 텐데. 단순히 생각에만 그치지 않는다. 상대를 몰아내려 한다. 몰아내기 전에 먼저 그들에게 위협을 가한다. 혐오, 증오 표현. 그리고 폭력까지.


이렇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상대는 나와 어울릴 수 없는 존재, 배척해야만 하는 존재가 된다. 이들이 있는 한 내 삶은 더욱 힘들어진다. 이제 내 삶에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기 시작한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집단이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신은 이미 그 집단에 빠져 나오기 힘들어진다. 혐오감정은 더욱 거세지고, 폭력으로 나아가기는 더욱 쉬워진다. 결국 폭력으로 폭발한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증오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이 중 많은 폭력이 '극우'에게서 나오고 있는데, 극우는 과거의 삶을 회상하면서 지금 이렇게 된 데에는 상대에게 책임이 있다고, 그들을 몰아내고 과거의 우리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극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의 영광을 현재에 구현하고자 한다. 남을 배척하면서. 이렇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민주주의는 포용과 타협, 다양성의 조화 아니던가. 그런데 '극우'는 이러한 다양성을 부정한다. 오로지 순수성, 단일성을 주장한다.


이런 순수성-단일성을 위해서 상대는 배척해야만 한다. 그러면서 온갖 논리를 끌어온다. 과학까지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한다. 사실을 왜곡한다. 책임을 상대에게 떠넘긴다. 그러면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유머로 위장한다.


혐오 표현을 하면서도 남들이 문제 삼으면 농담이었어요라고 한다. 그런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우리도 많이 겪은 일 아닌가? 단지 재미로요 라는 말들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하지만 이는 재미가 아니다. 알고 있다. 이들도. 혐오라는 것을. 다만 빠져나가기 위해서 이중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을 하는 것이다. 남들은 다 혐오 표현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중의 뜻이 담겨 있기에 넘어갈 수 있다는 듯이.


이런 '극우'가 갈수록 힘이 세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더 심한가 보다. 이 책을 보니, 미국의 극우는 정도를 넘어섰다. 하긴 그들 나라는 총기를 자유롭게 소지할 수 있는 나라지. 미국 극우들 중에는 백인들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


이런 극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책은 그 지점을 추적한다. 극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극우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한 공간에서만 극우들이 활동한다면 해결은 간단하다. 그 공간에 집중하면 된다.


한데, 이 책을 보니, 아니다. 극우들은 자신들의 이념을 사람들에게 주입하기 위해 일상으로 이미 들어왔다. 그것도 세련된 외양을 하고서. 이는 극우들이 의류 산업에까지 진출해서, 의류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음식 쪽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에 스포츠 특히 격투기 분야에 극우들의 진출이, 또 청소년(청년)들을 극우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남성성을 강조하면서, 신체의 강인함을 키워야 한다면서, 그러면서 그것이 멋있는 남성이라고 하면서. 단지 신체의 강인함을 키우는 것이라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극우 이념을 퍼뜨린다고 하니...


게임도 마찬가지고,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단체들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니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테고...


더욱 심각한 것은 학교, 대학교를 극우들이 공격한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교수, 학생들을 위협하거나 또는 자신들의 주장을 홍보하는 장소로 삼고, 대학가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인식하게 함으로써 지식을 신뢰할 수 없게 하고, 지식의 권위를 떨어뜨리려 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전문가(?이들에게 과연 전문가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지 의문인데, 교수나 또는 박사, 석사 등의 자격증을 지닌 인간들이라고 해야 하나?)들을 양성해 자신들의 논리를 공론장으로 끌고 온다고 한다.


극우 논리를 지식의 공론장으로 끌고 온 것,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되면 소수의 주장이었던 또는 드러나지 않았던 극우 논리가 공개적으로 표명된다고 한다. 주류 언론이라고 할 수 있는 방송을 통해서도 극우의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정치계로 넘어간다.


즉 주류 정치계에 극우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극우는 자신들의 영역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간다고 한다.


읽으면서 이거 무섭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또 우리나라에서도 극우가 자신들의 입지를 넓혀왔구나 하는 생각. 이런 극우들이 더 힘을 얻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그런데도 해결책은 조금 아쉽다. 물론 이렇게밖에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


독일의 한 정치인이 했다는 말.


"모든 사람이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편안함으로 느끼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88쪽)


그것은 민주주의가 강화되어야 한다. 아니 민주주의가 정착이 되어야 한다. 하여 저자는 '극단주의 예방과 민주주의 보호가 본질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인식에서 찾아야 한다. ... 모든 개인이 자신의 일상적인 공간과 삶의 현장에서 포용성을 증진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며,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이에 맞서 싸워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하도록 해야 한다.'(311-312쪽)고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또 가정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하고...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독일의 사례를 들고 있는데, 참조할 부분이 많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능할까 하는 지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안정감, 미래에도 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삶의 예측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현재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미래가 불안하면 그 책임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기 쉬우니 말이다. 그러니 우선 우리들의 생활을 살펴야 한다.


생활이 안정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누군가의 부유함이 누군가의 궁핍으로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생활이 안정되고, 미래가 예측 가능하면 '극단'이 설 자리는 자연스레 없어진다.


이렇게 서로가 살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한 방편, 그것이 민주주의 아니었던가. 남을 딛고 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는 것. 그러니 '극우'에 대해 생각할 때는 '민주주의'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위태로울 때 '극단'이 준동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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