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좋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첫시부터 어렵지 않다. 그야말로 직설이다. 상징이 있고, 비유가 있지만, 상징과 비유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게 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더 명확하게 하고 있다.


  이처럼 상징과 은유는 직설과 상반되는 것 같지만, 아니다. 직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상징과 비유다. 다만, 직설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라 직설은 없고 오로지 상징과 은유만 있을 때 그것은 직설과 상반된다.


  즉, 길을 잃게 만든다. 길이 어디 하나뿐인가? 또 길이 어디 다 똑같던가? 아니다. 길은 다 다르다. 폭도 길이도 평평함도 높낮이도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르지만 길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다. 때로는 우리가 길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도 길임에는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상징과 은유다.


길이 직설이라면 그 길이 지니고 있는 특성들, 길에서 발견하는 많은 것들이 바로 상징과 은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직설을 뒷받침하는 상징과 은유는 직설과 상반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직설을 하지 않고 상징과 은유만을 사용할 때다. 그냥 직설적으로 말하면 될 텐데, 일부러 에둘러 말한다. 이때 상징과 은유는 직설을 완화하거나 가리는 역할을 한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사기'다.


제 이익을 위해 말을 비트는 것, 직설을 감추고 상징과 은유, 또는 번드르르한 말들만 하는 것, 그것은 거의 '사기'에 가깝다. 아니, 사기꾼들의 말이 그렇지 않은가. 앞에서 듣기에는 좋은 말들이지만 결국은 피해로 돌아오게 되는 말들. 


이런 에둘러 말하기, 상징과 은유가 직설을 가리고 있는 말하기를 가장 잘하는 집단은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모두 국민을 위한다는, 국민의 뜻에 따른다는 말로 자신들의 의도를 가린다. 정작 자신들의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 그 의도를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게 하면서도 직설을 하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식으로, 에두르고 에둘러 결국은 자신들의 말이 사람들에게 스며들었을 때 그때 비로소 직설을 한다. 이것을 하자고... 이게 국민의 뜻이라고... 참... 이런 말하기가 정치에서 판칠 때 사람들은 헷갈린다. 무엇이 진실인가? 도대체 저 정치인이 말하는 의도는 무엇인가?


마치, 시인이 시에서 사용한 은유와 상징을 이해할 수 없어 머리를 갸웃거리듯이, 정치인의 말을 직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냥 뒤에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생각한다. 그 저의를 의심한다.


명확한 말하기, 이것은 정치인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정치인은 자신의 속내를 숨겨야 한다고 말이 이 나라 정치판에 정설처럼 되어 있었으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직설로 하는 정치인은 사방에서 공격을 당했으니까. 어떨 때는 세련되지 못했다고까지 비판을 받았으니까. 그러면서 자신들의 의도를 감추고 에둘러 말하기, 은유와 상징을 동원하기가 정치인의 덕목인 것처럼 말하는 정치인들이 득세를 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정치인은 명확하게 자기 의견을 말해야 한다. 정치인의 말하기는 직설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은유와 상징을 직설을 뒷받침하는 말로 쓰는 정치인은 직설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다. 고 노회찬 의원 같은 경우를 보라. 그가 사용한 은유와 상징들을 누가 직설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니라 직설을 감추려고 하는 은유, 상징들을 사용하는 정치인, 그것이 문제다.


자기 의도를 감추고 국민의 뜻 운운하는 정치인들 말이다. 그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헌법에 분명히 있는 조항조차 알지 못하는 듯한 말하기를 하는 정치인들은 참... 


최보기 시집을 읽으면서 최근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개헌'논의가 떠올랐다. 이들에게 제발 직설하자로 하고 싶을 정도로. 헌법조차도 저들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그러한 정치인들에게 이 시를 들려주고 싶다.


  시여, 직설하자


그러니까 말인데

시를 쓰는 시인이


육이오 때 삼팔선에서 죽은 예수가

식은밥 한 덩어리에 운다


저리 써놓으면

뭐가 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게 무슨 말인지 시인 저도 모르더라.


그러니까 말인데

시는 은유와 상징이라는 법률이

지나치게 상징적인 바,

직설로 가슴을 울리고 뇌를 충격하자.

은유와 상징이 머리카락 꼭꼭 감추는 사이

세상은 직설이 바꾸더라.


'나라를 확 혁명하자'는 말

얼마나 쉽고 간결한가.


그러니까 말이지

시여, 직설하자.


최보기. 가타하리나 개부치 씨. 달아실. 2023년.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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