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7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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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 오래 전에 들은 이름이다. 이슬람에서 적으로 규정한 사람. 그를 처단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렇게 알고 있었다. 단지 소설을 썼을 뿐인데... 그 소설이 바로 이 소설 [악마의 시]다.


어떤 소설이길래 그렇게 극단적인 탄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이슬람과 반대로 다른 종교에서는 그에 대해 이러한 반감을 가지지 않았는데...


문득 종교를 종교로 인정한다면, 그 종교의 특성을 인정해야 하고, 그 종교에서 꺼리는 일(표현)은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는데...


종교인이라면 자기 종교를 무시하거나 비판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으니,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종교와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살만 루슈디가 기독교 신자던가? 


현대에는 기독교와 이슬람이 서로를 배척하는 경향이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살만 루슈디는 인도의 봄베이(요즘은 뭄바이라고 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봄베이라고 나온다)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면 그는 무슬림에 대해서 잘 알고 또 무시하지 않을 사람일 테다.


그런 그가 이슬람으로부터 탄압을 받는다? 도대체 이 작품의 어느 부분에서 이슬람의 분노를 샀을까? 소설을 읽을 때 그것을 중점으로 읽으면 안 되는데, 작가의 이력이 그러하니, 자연스레 그 점을 먼저 생각하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 그런데 1권을 읽으면서 도대체 어느 부분이 이슬람의 분노를 일으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슬림이 아니라서, 그 종교에 무지해서, 그 종교에서 금기시하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를 몰라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1권을 읽으며 이슬람이 분노한 이유를 찾지는 못하겠다. 다만 선지자 무함마드를 작품 속에 등장시켰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 소설 속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무함마드에 대한 영화를 만들더라도 그를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는 직접 등장하고, 그것도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 또 당시 사람들에게 악마인 '마훈드'로 불렸다는 표현이 있으니 이런 점에서 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예언자가 되겠다고 산을 오르는 이 고독한 인물도 여기서는 중세부터 아이들을 겁주던 이름, 악마의 동의어, 즉 마훈드라고 칭한다.'(149쪽)


한 종교에서 신성하게 모시는 인물에 대해서 표현할 때 조심해야 하지만, 문학의 역사에서 신을 표현한 경우, 신을 인간처럼 여러 고뇌하는 모습으로 표현한 경우가 있지 않은가. 게다가 고뇌를 딛고 경지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신성한 존재를 더욱 신성하게 여기게 하지 않나 하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굳이 이 작품에서 작가가 이슬람의 분노를 일으킨 장면을 내가 찾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작품을 읽으면 되지 않나 하면서 작품 전개에 중심을 두고 읽기 시작.


이야기는 두 사람과 두 장소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브릴 파리슈타와 살라딘 참차라는 인물이 인도의 봄베이(뭄바이)와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탄 두 사람. 비행기가 폭발하고, 둘은 살아남는다. 그런데 지브릴은 천사로 변하고, 참차는 악마로 변한다. 지브릴, 가브리엘이라고 할 수 있는 대천사로 변한 그의 꿈에 무함마드도 또 이란의 이맘도 나오는데 그들에게 계시를 주는 모습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참차는 염소의 형상을 한 존재로 변하는데, 이를 악마라고 할 수 있다. 즉 참차는 악마로 변신해 사람들을 피할 수밖에 없지만 그를 보호해주는 사람들 속에서 지내게 된다. 1권까지는.


1권의 마지막에 참차는 극도의 분노를 보이고, 이 분노로 인해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무서운 증오심을 터뜨린 덕분에 도로 '인간화'된 모양이었다'(452쪽)는 표현으로 참차가 인간으로 돌아온 것으로 1권은 끝나고 2권으로 이어진다.


이 1권에서 지브릴을 통해서는 종교를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사막의 도시에서 이슬람이 펼쳐지는 과정을 '마훈드'와 '아예샤"라는 장에서 보여주고 있다면, '엘오엔 디오엔'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도시'에서는 현대의 모습, 즉 이민자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독립하면서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와 인도로 분리가 되었는데, 그럼에도 영국인처럼 되고 싶어하는 살라딘 참차의 모습. 이런 참차가 악마로 변하는 것은 바로 영국인을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의 눈에는 인도인이나 또는 아프리카계 사람들, 동양인들은 괴물과 같은, 그들과는 다른 인간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살라딘 참차의 변신이고, 이러한 참차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경찰, 또 그들에게 언제 어디서든 폭력을 휘두르는 식민주의자들이다. 그러한 두려움이 참차의 변신을 통해 잘 그려지고 있는데...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는 존재는 악마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무함마드를 '마훈드'라는 악마로 지칭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존재니까. 그들이 악마로 부르고, 또 스스로도 악마로 지칭하는 것은 그들의 인식을 뒤집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퀴어'라는 말을 전복하여 쓰고, '이반'이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이 소설에서 '악마'는 악마가 아니다. 기존의 틀을 깨는 존재다. 그러니 이러한 악마는 기존 사회에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수밖에 없다. 참차의 흉측한 모습에도 그를 꺼리지 않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그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하여 '종교'는 지브릴을 통해, 현대 이민자들의 삶은 참차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소설. 서구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을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다. 2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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