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애의 비극
제인 워드 지음, 노지양 옮김 / 라우더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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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비극'이 아니고?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이성애 중심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이 책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뒤집고 있다.


'앨라이(얼라이ally)'라는 말에서 이 뒤집힌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보통 앨라이는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쓴다. 다수가 소수와 함께 한다는 의미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그런데 이 책에서는 '앨라이 관계'를 반대로 뒤집어 보는 일 안에는 어마어마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내포되어 있다. 퀴어들은 여성혐오의 역설 아래에서 고통받는 이성애자들에게 페미니스트로서 개입하고 퀴어 관점에서의 가이드를 제공해줄 수 있다.' (70쪽)고 하고 있다.


그간 이성애자들의 사랑은 여성 혐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를 여성 혐오라고 하기가 그렇다면 여성 억압이라고 해도 좋겠다. 남성의 기준에 맞는 여성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이성애적 사랑 아니었던가?


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자세, 행동, 외모, 말투 등등, 그리고 집 안에서 여성으로서 해야 할 일 등등... 그러한 것들이 이성애적 사랑으로 감춰진 여성 억압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인데... 이러한 억압에 바탕한 사랑이 과연 진정한 사랑이냐고...


오히려 남성의 욕망을 해소하는 대상으로서 여성을 필요로 한 것이지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랑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이 책 '이성애의 비극'에 담겨 있는 뜻이다.


책의 앞부분을 보면 '이성애의 비극'은 여성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가부장적 폭력의 세계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잃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바로 '이성애의 비극'이란 이름으로 나타나니까.


그래서 '앨라이 관계'를 뒤집는다는 것은 퀴어들이 이성애적 사랑을 하는 여성들에게 동조하면서, 그들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남성 욕망의 객체가 아니라 자기 사랑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그러한 사랑을 가르쳐줄 수 있는 존재가 퀴어들이라고... 특히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을 참고해야 한다고...


그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모델은 뭐지? 간단하다. '각자의 성적 욕망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것'(295쪽). 이는 누구를 의식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에게 충실한 사랑이라는 것. 자신만큼 상대에게도 충실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에서 에로틱은 '동일시이고 상호 인정이며 기쁨이 피어난 자리'(294쪽)라고 한다. 주체/객체의 분리가 아니라 서로가 주체가 되는, 존재 자체로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가부장적 권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를 내 욕망의 객체로 삼는 것도 있을 수가 없다.


이런 점에서 퀴어들이 이성애자들의 '앨라이'가 될 수 있다고, 그간 사회의 통념을 뒤집는 주장을 한다. 


보통 퀴어들이 힘들게 사랑을 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사랑에 충만함과 기쁨을 느낀다고...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는 관계로 만들어간다고... 그럼에도 동성애 혐오가 사회에 있는 이유는 '이성애적 불행과 비참함이 외적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217쪽)고 하는데, 


이것은 '반복되는 퀴어의 시련 서사는 그 고통에 동반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을 상쇄해주는 퀴어로 사는 것의 심오한 기쁨을 무화하고 이성애적 삶은 젠더화된 폭력과 고통에서 자유롭다고 암시하면서 이성애 규범성을 더욱 공고하게 이 사회에 심어놓는다'(23쪽)는 말로 구체화하고 있다. 결국 동성애 억압은 이성애자들 또는 가부장적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불행이나 억압을 덮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현상이라고 보면 된다.


차별은 결국 내 안의 결핍을 외부에게 전가하는 것인데, 내 안의 결핍이 결핍이 아니라 바로 자신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다른 존재들을 차별하려는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저자는 그간의 통념을 뒤집는다. 동성애자들이 힘들다는 생각을, 이성애자들이 얼마나, 특히 여성 이성애자들의 비극에 대해서 여러 사례를 통해, 그것도 동성애자들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극이성애적인 남성 hyperstraight man'은 여성의 몸에 끌릴 뿐 아니라 여성이라는 종의 집단적 자유에 대해서도 끌린다.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은 여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이성애적인 남성, 다시 말해 깊은 이성애자가 되고 싶다면 ... 그 사람은 반드시 페미니스트여야 한다.'(315-316쪽)


이보다 명확하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사랑에 굳이 성별 구분을 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까지 성별 구분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그러한 구분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냥 사람을 사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을 해야 할 뿐이라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를 이 책의 해제를 쓴 한채윤의 말로 끝을 맺는다. 이보다 더 명확하게 사랑을 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정리할 수 있을까 싶다.


"같다고 하기엔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평등한 관계를 상상하는 힘이 없다면, 그것이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사람 사이의 관계는 결국 '꽝'이 될 뿐"(329쪽)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책은 퀴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하고, 사랑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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