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받아보았던 잡지들이 하나둘 폐간이 되거나 휴간이 되더니... 그러더니 격주간에서 월간으로, 월간에서 격월간으로, 격월간에서 계간으로, 다시 계간에서 반연간으로 바뀌는 잡지들을 보게 된다.


  책이라는 물성을 지닌 존재가 우리 곁에 오기가 많이 힘들어졌구나 하는 생각.


  특히 돈이 되지 않는 잡지들은 발간을 지속하기가 힘든 상태가 되었음을 느끼게 하는데.


  [삶이보이는창]을 처음 만난 것은 격월간지였을 때였던가, 두 달에 한 번 만나다가, 계간지로 변경이 되어 세 달에 한 번 만나다가, 이번에 보니 일년에 두 번, 1월과 7월에 발간을 한다고 한다.


  그만큼 운영이 힘들어진 거겠지. 참 많은 잡지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 일상의 삶을 다루는 잡지는 점점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니, 그 점이 안타깝다.


  그럼에도 아직 폐간은 아니다. 한 해에 두 번은 만날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주의해서 눈길을 주지 않던 삶들. 그런 삶들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보여주는 글들이 실려 있는 이 잡지를.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화가나 그림에 대한 이야기, 새에 관한 이야기, 자신이 살고 있는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등등이 실려 있어, 특별한 삶이 아니라 이런 보통의 삶들이 바로 우리의 삶임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여기에 '문학' 부분이 있어서 시도, 시인에 대한 이야기도 가끔 소설도 읽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이 잡지에는 온갖 삶들이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호에 실린 단편소설 '오븐이 켜지는 시간(이상무)'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종사원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이들 밥을 해주기 위해서, 즉 아이들을 살게 하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죽어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그런데도 학습권 운운하면서 그들의 파업을 막으려 하는 학생의 모습에서, 몇 해 전에 모 대학에서 일어났던 학생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이 잡지가 어떤 잡지던가? '삶이 보이는 창' 아닌가. 학생들은 자신들의 점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신들에게 밥을 해주는 노동자들이 남이 아님도 안다. 그들의 노동으로 자신들이 맛있는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그런 맛 있는 한 끼에 노동자들의 목숨이 담보로 걸리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안다. 함께 살기 위해서 밥을 하고 먹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조금 맛이 없더라도 남의 건강을 해치는 요리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그 점을 이 소설 속 학생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조리종사원을 '이모'라고 부르는데, 이 '이모'는 시중의 음식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부르는 호칭의 의미가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과 같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친밀한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고 있는 것이다.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병에 걸릴 위험이 있는 요리를 해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테니... 그렇게, 학교라는 장소에서 함께 지내는 이들의 모습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그것이 파업이라는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통해서라도 이루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우리나라 학교 현장을 생각하게 된다. 학교 급식이 공공화 되었지만 과연 조리종사원들이 일하는 환경은 나아졌는지... 여전히 암에 걸리는 사람,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고, 하는 일에 비해 사람 수는 적은데, 학생수가 준다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깎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예산에 여유가 있다면 이러한 환경 개선에 우선 투자를 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우리나라 학교 환경은 여전히 좋지 않은데,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환경은 더더욱 좋지 않으니... 학생수에 맞춰 주던 교부금을 학교 전체적인 교육 환경 개선에 쓰도록 한다면... 결코 많다는 소리를 하지 못할 텐데.


이런 삶. 또 다른 많은 삶들. 내가 살아보지 않지만 [삶창]을 통해서 다른 삶들을 만나고, 그 삶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를 꿈꿀 수 있으니, 이것이 책을 읽는 보람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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