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몇몇 단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저 말이 저렇게 부정적인 말로 쓰일 수가 있었나 싶은 말들.
그 중 한 말이 '자기 정치'라는 말이다. 세상에, 정치인은 모두 '자기 정치'를 하는 것 아니었나? 자기 정치를 하면서 자신과 비슷한 정치적 신념을 지닌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모여 정당을 이루면서, '자기 정치'를 '우리의 정치'로 또 '국민의 정치'로 확장해 나가는 것 아니었나.
'자기 정치'도 할 줄 모르면서 남의 정치에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들을 정치인, 아니 좋은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나?
'자기 정치', 그것을 명확히 밝히고, 동료를 모으고, 또 시민들,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 정치인이 바로 좋은 정치인 아닌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힘센 자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기 말을 이리저리 바꾸지 않고, 행동을 그때그때 유리한 쪽으로 하지 않고, 뚝심있게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지금의 정치판 아닌가.
한때 우리나라도 이러한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을 좋은 정치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사람을 지지하기도 했었고. 지금도 그런 정치를 한 사람이 인정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런데, '자기 정치'를 이렇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말로 쓰다니... 이거야 원. 이건 정치의 실종 아닌가. 그냥 강한 자의 정치를 따라하거나 침묵하거나 해야 하는 걸까?
그러면 도대체 왜 정치를 하는가? 자기가 실현하고 싶은 정책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하지 않나?
하려고 했으면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자기 정치'를 해야 하고, 그러한 '자기 정치'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그때는 정치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시대 선비들... 그 선비들 중에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테고, 그 말을 떠들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텐데, 그들 중에서도 '자기 정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때 미련없이 낙향을 했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던가. 후일을 도모하면서...
'자기 정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정치'가 실현될 때를 기다리는 자세. 내 때 되지 않으면 내 후배들, 또 제자들, 그 제자들 때에라도 실현될 수 있게 교육에 힘썼던 것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뜬금없이 '자기 정치'를 한다고 상대를 비난하다니... 정치인은 모두 '자기 정치'를 해야 하고, 이 '자기 정치들'이 모여 '정당 정치'가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담, 정당에 들어가서는 '자기 정치'를 포기해야 하나? 그 선이 어디인가?
포기가 아니라 '자기 정치'의 확대 아니겠는가? 나만이 옳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안에서 토론과 학습을 통해 '자기 정치'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자기 정치'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문제는 '자기 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서로의 '자기 정치'들의 접점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고민하지 않는 것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인데...
그렇다고 아집과 독선, 독단에 빠져서 하는 행동을 '자기 정치'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런 착각을 '자기 정치'라고 여기고 밀고 나가는, 제가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듣는 정치인도 있는데... 이들에게는 '자기 정치'란 말을 써서는 안 된다. 그건 정치에 대한 모독이다.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이득을 지키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이런 생각... 강재남 시집을 읽다가 든 생각인데... 세상에 시와 정치가 이런 식으로 연결이 될 수도 있구나, 그렇지만 시나 정치나 모두 언어를 통해서 상대에게 전달이 되는 것이니,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겠지 하는 생각도 하고.
'자기 정치'가 외연을 확장해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힘을 받아 현실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독창성과 고답성이 충돌하는 지점'('고답적인 너의 나라'에서. 16쪽)을 파악하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것.
즉 정치는 완전한 새로움도, 또 완전히 옛것을 고수하는 것도 아닌, 옛것과 새로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고 나아가는 것. 그러할 때 '이상하고 아름다운'('고답적인 너의 나라'에서. 16쪽) 정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렇게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그들이 스스로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남들이 알아주게 된다는 사실을... 이 시집에 실린 시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를 읽으며 생각했다.
소리 내며 지는 꽃은 없다
빈손인 내게도 가을이 찾아왔다
무엇을 남기며 살고자함이 아니었지만 풍요로 남실거리는 들판이나 날개를 접은 저녁, 놀이 물드는 하늘을 보노라면 자꾸만 내 빈손이 들여다뵌다
발걸음 따라 걷다 온 수월리, 하양지를 돌아 나오는 길섶으로 청노루 따먹던 연한 칡순이 계절을 잊은 듯 땅으로 뻗쳐 보랏빛 웃음 흘리고 있다
철지난 그 꽃 어제를 모르고 스산한 바람 앞에 한줌 흙이 되어 땅으로 질 터인데 거짓 없이 싹틔우고 꽃 일궈냈음을 스스로 자랑 숨기고 소리 없이 질 터인데,
지상의 꽃들 일제히 우우 소리로 존재를 드러내 어찌 바람에 몸 맡기어 흔들리고 싶지 않으리 생각의 마디 툭툭 꺾어 마음불 지피고 싶지 않으리
비우고 걸어가는 꽃길을 따라 이 가을 나도 해탈을 향하여 서늘하게 지고 싶다
강재남, 이상하고 아름다운. 서정시학. 2017년 초판 2쇄. 74-75쪽.
그렇게 읽은 것이 이 시를 잘못 읽은 것이라 해도, 하, 역시 '고답성과 독창성 사이'에서 이 시를 그렇게 읽었다고 하면 지나친 곡해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