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리 만개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박지숙 그림 / 마음산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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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은 정말로 쓸모없는 것일까'('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 중에서. 46쪽)


쓸모없다는 판단을 누가 하는가? 거기에는 나와 남을 가르는 기준이 존재한다. 그러면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을 쓸모로 판단한다. 즉, 내게 유용하면 쓸모있음, 유용하지 않거나 내가 어떤 쓰임을 알지 못하면 쓸모없음.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존재들, 또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존재들은 어떤가? 이들은 쓸모없음의 범주로 들어가게 되는가?


이들이 쓸모있음의 범주로 들어오려면 내가 이들에게서 어떤 유용성을 찾아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내게 쓸모있음이 그들에게는 고통일 수 있다면?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조정하는 것이라면?


즉, 그들의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지 않고, 나라는 존재를 기준으로 해서 판단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우리는 인간이 없는 행성을, 또는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사는 행성을 상상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행성이 있다면 당연히(?) 인간을 구출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중심주의. 즉 존재의 쓸모있고 없음을 인간을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많다. 그러니 화성이나 달을 개척하겠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지구말고도 다른 행성에서도 지배적인 위치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하지만 이 소설집, 김초엽의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인간을 중심에 놓는 것에 의문을 지니게 된다. 생태주의자들이 했듯이, 또는 고대 중국의 노자가 '쓸모없음의 쓸모'를 이야기했듯이, 그렇게 인간 이외의 존재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인간중심주의에 빠져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 그냥 우리 눈에 비친 것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 '모래 이야기'라면, 인간의 쓸모에 부합하지 않아 버려진 존재도 스스로의 의미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주는 '사각의 탈출', 그리고 마을에서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당하는 미라 아주머니가 등장하는 '끈적이'라는 소설. 여기서는 통념에서 벗어나는, 또는 사회에서 쓸모있음으로 규정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가 등장한다.


'그들이 책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을 만들 거야. 정의에서 달아나고, 사전에서 달아나는 것을 만들 거야.'('끈적이' 중에서. 91쪽) 


이것이다. 바로 '쓸모있음'에 갇혀있지 않겠다는 것. 즉 여기서의 쓸모없음이 꼭 쓸모없음이 아닌 쓸모있음일 수도 있다는 것.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고정된 것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 정지는 그냥 정지가 아니라 수많은 움직임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설들인데...


'멈춘 줄 알았던 것들은 사실 멈춰 있지 않았어. 고정된 줄 알았던 것들은 단지 다른 시간의 규모를 지닌 것뿐이었어.'('모래 이야기' 중에서. 25쪽)라는 말에서 이 점을 느낄 수 있다.


'사모나'라는 소설에서는 인간이 아닌 '파티클'이라고 하는 존재가 중심이 된 행성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이 행성에 있는 인간을 구출하려는 사람들에게 '사모나가 정말로 파티클의 행성이라면, 정말로 그런 존재가 있다면 ... 우리가 감히 개입할 자격 같은 건 없지 않겠습니까'('사모나' 중에서. 201-202쪽)라고 말하는 인물. 왜 모든 행성에 인간이 중심이 되어야 할까?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 질문. 


이 인물을 통해 '쓸모있음'이 얼마나 인간 중심으로 해석되어 왔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이고... 이 소설에서 바로 맨 앞의 구절을 인용했는데... 


이 소설의 뒤로 가면 해파리들이 만개한 세상에, 해파리와 공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해파리를 멈츄는 방법을 알아냈다. 바로 해파리를 그냥 놔두는 것이다.'('해파리 만개에 관한 기록'에서. 73쪽) 이것이 바로 해파리를 쓸모있음과 없음의 기준으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중심의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과 연결되어 각 행성마다 다른 인간중심의 판단이 같은 존재에게 가하는 폭력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 '젤리의 우울'이라는 소설이다. 눈물의 필요성에 따라 대우받거나 무시당하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니, 역시 '쓸모있음'의 기준이 무엇인지, 그것이 과연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인지 생각하게 한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만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해서 과연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끝까지 종속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에 실린 내용들이 지금은 상상이라고 하겠지만,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쓸모로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의 존재 자체에 대한 생각, 인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냈다고는 하지만 이 지구에서 함께 존재하는 또다른 존재가 될 인공지능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에 대한 시사점을 이 소설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지만 소설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글자가 아니라 소설 속 세계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온갖 존재들이 모두 각자의 쓸모를 지니고 있음을, 그 쓸모를 어떤 특정한 한 존재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범주에 가두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 소설집이다.


역시 김초엽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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