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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이병한이 쓴 [이병한의 아메리카 탐문]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 '자수성가'라는 말로 정리되는 책이라고 생각했으니.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쉽게 '라떼는~'을 말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을 사회의 책임보다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J.D.밴스. 솔직히 모르던 이름이었다. 모르던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름을 들었어도 관심이 없었다는 뜻인데,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부통령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것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있는 정부에서 그 다음의 자리인 부통령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니, 내게 호감을 줄 리가 없다. 그런 사람이 쓴 책을 읽을 일도 없다고 여겼고.
40세에 부통령이 된 사람이니 좋은 환경에서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이겠거니 했다가, 이병한의 글을 읽고 아니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데, 자신이 성장한 환경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 정말 '꼰대'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나이 불문하고 그들은 환경에 매몰돼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 자신은 그 소굴을 벗어났으니까. 그런 소굴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니까.
과연 그럴까? 이 책을 읽으면서 밴스 역시 사회, 국가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것을 이겨내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으니까. 비슷한 환경인데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 것을 사회나 국가에 미룰 수는 없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밴스가 극도의 가난을 경험했던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다. 물론 그가 가난한 생활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살던 곳은 미국에서도 가난한 마을이었고, 대다수의 가정이 불완전했고 폭력적이었으며, 많은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술이나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그도 그럴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이 지닌 폭력성. 말보다는 몸으로 해결하려는 모습들. 수없이 이혼을 하고 마약에까지 손 대는 엄마. 아빠 없이 자란 밴스. 여기까지 그가 자란 환경을 보면 그 역시 폭력과 마약, 그리고 성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는 빠져나왔는가? 아니 그는 이런 환경에서도 또다른 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사실 돈이 없어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다른 것을 지니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다. 물론 고급 음식점에 가지 못하고, 유기농 음식을 먹는 대신에 패스트푸드로 끼니를 때웠지만, 굶주림의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에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있었다. 또한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주려는 누나가 있었고. 이들이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주었으니... 그에게는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하고 대학을 가는데, 대학에 가기 전 해병대에 입대에 학비를 마련하고, 어느 정도 성장을 한다. 대학에서도 공부에 집중에 약 2년만에 졸업하고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한다.
미국에서도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 정치인들이 나온 예일대에 다니면서 연애를 하고, 자신의 삶을 다른 세계로 옮기게 되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을 쓴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성공담이다. 이 성공담을 통해서 그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그런 환경을 벗어나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게 될까를 고민하는데...
개인이 중요함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개인을 비난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혼자서 그런 환경을 벗어기는 무척 힘들다.
밴스 역시 할머니, 할아버지, 누나, 이모들이 있었고, 자신에게 모범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우연히, 정말 우리가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처럼 그는 운이 좋았다고 자신도 이야기한다. 여기에 그는 백인이다. 자신은 와스프(WASP)가 아니라고 하지만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미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태어났다거나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조건이라는 뜻이다. 이런 우연이 없었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해보자. 전적으로 자신을 받아들여 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자신에게 다른 삶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에 그냥 빠져들기만 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노력하려는 자세를 갖추게 될 것이다.
노력하라고, 이렇게 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자신이 믿는, 자신을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이야기한다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개인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책임이 물론 크지만, 그러한 개인에게 다른 삶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회와 국가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아니겠는가?
즉 좋지 않은 공동체가 아니라 힘든 환경에서도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공동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충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정보,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와 국가의 의무다.
밴스는 부통령이 되었다. 과연 그는 그런 환경과 기회를 만들어주고 있을까? 미국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한 내게는 그가 그런 정책을 펼치는지 알 수가 없지만, 트럼프라는 사람이 그런 정책을 펼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그가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환경과 기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학교다. 의무교육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이니, 학교에서 다른 삶을 경험할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한다. 교육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고, 학교를 통해서 다른 삶을 만나고, 보게 되고 또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며,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자신만이 겪고 있는 일이 아님도 알게 될 것이고.
신뢰받는 교사들이 있다면 학생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고, 또래 집단들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밴스가 예일대 로스쿨에 들어가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명문이라고 하는 학교에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전, 의무교육을 받는 동안 모든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한다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라도 다른 삶을 꿈꿀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에 마을 환경을 개선하고, 위기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는 잘 서술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내용은 없다. 구체적인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 환경을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밴스가 말하듯이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 다른 삶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는 것 말고, 사회가 국가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 미국 부통령이 된 지금, 그가 이 책에서 쓴 내용을 과연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없으니...
자수성가한 사람, 진흙탕에서도 꽃을 피워낸 사람의 이야기로 읽기에는 좋지만... 그가 과연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런 정책을 펼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인데, 개인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회 제도를 바꾸려는 모습을 밴스가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에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책이다.
참고로 힐빌리는 가난한 마을 사람을 일컫는다고. 화이트 트래시 white trash 또는 레드 넥red neck이라고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