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지 않는다는 착각 - 차별은 어떻게 생겨나고 왜 반복되는가
홍성수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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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차별은 어느 정도일까?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에 차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많은 부분에서 차별이 사라지거나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차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차별금지법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별이 있는데, 차별이 옳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차별금지법은 반대한다. 왜 그럴까? 자신의 자유를 차별금지법이 빼앗는다고 생각해서라고 하는데, 차별금지법이 주장하고 있는 큰 내용이 차별을 하지 말라는 것인데, 여기에 자유의 제약이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차별을 해도 된다는 말이 되지 않는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내 뜻대로만 할 수는 없다. 내 자유야! 하면서 누구나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공동체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 규범이 차별을 하지 말자는 것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차별은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고, 누군가의 존엄을 해치는 일이 일어나는 사회를 공동체라 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십분 양보하자. 차별금지법이 자유를 침해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자유를 침해할까? 바로 공동체의 안녕을 해치는 한에서만 금지한다는 법 아닌가.


모든 분야에서 금지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소수자를 싫어한다는 마음까지도 규제하지 않는다. 그것을 사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규제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저자는 '차별금지 사유의 의의'를 이렇게 표로 정리하고 있다. (86쪽)


표제 내용
소수자 집단 차별금지 사유로 구분되는 집단은 상당 기간 차별받아왔고
지금도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 집단이다
합리적
이유의 부재
차별금지 사유는 고용, 교육, 재화·용역의 이용·공급 등에서
고려되어야 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유의미한 요소가 아니다
비자발적 요인 차별금지 사유는 생물학적, 태생적,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일부가 된 것으로서
여기에는 사살상 선택의 여지가 없거나 상당한 제한을 받는다
인간 존엄 훼손과
차별 조장의 효과
차별금지 사유로 부당하게 구분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훼손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표에서 두 번째 합리적 이유의 부재의 내용에 보면 이 분야에서 차별금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즉 합리적 이유의 부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이런 분야에서는 차별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표에서는 '공공서비스'가 빠졌는데, 공공서비스 분야에서는 차별이 당연히 일어나면 안 되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부분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분야에 공공서비스가 들어가 있다.


그러니 공동체생활에 꼭 필요한, 홀로 존재할 수가 없는 이 분야들에서 차별이 금지되어야 한다는 법이 차별금지법이다.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는 법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했다. 왜 그런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또 무엇이 차별인지, 어떤 영역에서 차별이 규제되어야 하는지, 지도나 규제, 처벌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살펴보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는 법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지도와 교육을 통해서, 합의를 통해서 해결되는 쪽을 우선하고,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차별금지법은 법으로 해결하기 전에 처벌 대신 권고를 하고, 권고에 이어 시정 명령을 내리는 쪽을 우선해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차별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라고.


하여 저자는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기능은 기업, 대학 등 개별 조직에 대한 차별금지와 다양성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고 각 조직이 스스로 차별금지, 다양성 정책을 수립하도록 유도하는 것'(254쪽)라고 한다.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남을 차별하는 것이 좋다는 말인가? 그것을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반대하는 이유가 자유라면, 그 자유가 무한한 자유가 아님을 당사자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자유를 침해당하기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경우에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자유가 허용되는 사회보다는 모두가 차별 없이 존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취지다'(213쪽)라고.


건강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하고, 우리는 동일한 또는 비슷한 존재들끼리의 모임보다는 다양한 존재의 모임일 때 더욱 좋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보장하는 기업이 얼마나 효율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지를 예로 들어 보여주고 있기도 하지만, 다양한 존재들이 모였을 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음은 여러가지 사례들로 밝혀져 있으니 말이다.


'차별을 금지하고 평등과 연대를 지향하는 것은 우리 공동의 미래를 위한 가장 지혜로운 투자다. 차별금지법은 공존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법이다.'(24쪽)는 저자의 말에 이런 의미가 잘 드러나 있고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에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말 그대로 '절박한' 생존권의 문제'(200쪽)라고 차별금지법 또한 우선해야 할 민생 문제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은 없다. 아니, 물 밑에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탄핵 정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외쳤던 것이 바로 차별금지였기에... 빛의 혁명을 통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다들 이야기하니, 빛의 혁명이 주장했던 차별금지의 기초가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이제 우리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 시급한 민생문제임을 정치권에 알려야 한다. 정치권은 시민의 압력이 없으면 잘 안 움직인다. 그나마 많은 분야에서 차별이 줄어든 것도 당사자 또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한 것이 과거가 되도록 하루빨리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었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도로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 차별금지법이 없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 특정 종교계 일부에서 지극히 부당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게 전부다'(10쪽)라고 하고 있는데, 특정 종교계가 아니라 '일부'다. 정치인들이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라는 말을.


저자의 통계를 한 번 더 인용한다. '미국의 주류 장로교가 이미 오래전에 동성애를 포용하기 시작했고 2025년에는 주요 감리교도 동성애 포용 정책에 합류했다'(181쪽), '2022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42.4퍼센트가 차별금지법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는 31.5퍼센트였다'(183쪽)


그러니 법을 제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별금지법 제정은 한국 사회가 혐오와 차별과 결별한다는 점을 '정치적'으로 확인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276쪽)는 저자의 말 마음에 새겨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독일 사람인 니묄러의 말이 생각났다. 이를 하나의 소수자를 차별할 때 침묵하면 결국 자신이 소수자가 되었을 때 남들도 침묵한다는 것. 차별에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없애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쪽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했다. 시라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형식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하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르틴 니묄러


이 말이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저자의 논의 명쾌하다.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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