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퀘이크
커트 보니것 지음, 유정완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는 팽창한다. 계속 팽창하던 우주가 어느 순간 멈추더니 수축을 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시간이 뒤로 간다. 그런데 수축도 계속 하지 않고 딱 10년만 한다. 그리고 다시 팽창하기 시작한다.


우주가 팽창하는 것을 시간이 앞으로 가는 것으로, 수축하는 것을 시간이 뒤로 가는 것으로 상상하고, 이 수축이 빅뱅과 같이 순식간에 일어나 인간들은 인식하지 못할 순간이라고 상상한다.


[타임퀘이크]는 그러한 상상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다. 시간이 10년 뒤로 갔다. 인간은 그 10년 동안 똑같이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과거의 삶을 재연하는 인간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온다.


자유의지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올 때 10년 간의 관행이 몸에 박혀 오히려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혼란에 빠뜨린다. 이 혼란 상황을 수습하는 것이 킬고어 트라우트다.


물론 그 역시 우스꽝스럽게 그 혼란을 수습하지만, 우스꽝스러우면 어떠랴? 혼란이 멈추고 인간들이 다시 자유의지로 살아가게 되면 좋은 것이지.


그럴까? 자유의지로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하지만 과연 자유의지가 제대로 작동할까? 그 자유의지에는 이미 자유라고 믿게 하는 강제가 숨어있지 않았을까?


자유의지가 있다면 인간들이 과연 지금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타임퀘이크 때, 분명 과거이고, 자신은 과거로 돌아갔음에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연배우처럼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있었던 것을 그대로 따라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보니것은 자유의지를 지니게 되었다는 타임퀘이크 이후에도 인간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인생에서 사람들은 타임퀘이크 후 재연 기간처럼 변화하지도 않고, 실수를 저지르고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사과하지도 않는다.'(214쪽)


아마도 보니것이 10년이라는 타임퀘이크를 상정한 것이 현재를 비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지금-여기를 잘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위해서.


타임퀘이크라는 상상을 통해서 보니것은 1990년대 또는 그 이전의 미국 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다른 소설에서도 나왔던 장면들, 또 그의 또 다른 글에도 나왔던 사건들,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다.


보통 일상에서 겪는 일들, 또 그때 자신이 생각했던 것들, 그리고 현재 안타까워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재연할 수밖에 없는 시공간을 통해서 우리가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게 하고 있다.


하여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서 보니것이 말하고 있듯이 작가를 생각하게 된다.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1990년대의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 미국이라는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그대로 가면 안 된다고 여기고 풍자를 통해서 사람들의 인식에 변화를 주려고 했던 작가를 말이다.


'어떤 예술작품이건 그건 두 사람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의 절반을 차지해. 작품은 우리에게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해 많은 걸 얘기해주거든. ... 그림이 유명해지는 건 그것의 그림다움이 아니라 인간다움 때문이야.' (222-223쪽)


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보니것의 소설이 유명해지는 것은 그의 소설이 지닌 소설다움이 아니라 보니것이라는 작가가 지닌 인간다움이 소설 속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라는 것. 그의 인간다움이 계속 우리에게 말을 걸고 거기에 우리도 응대를 하고 있다는 것. 


(작가와 작품을 일대일로 대응시킬 수는 없지만, 작품에는 작가가 담겨 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작가와 작품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적어도 보니것의 소설에는 보니것을 빼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그는 작품에 직접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 그리고 역사적인 인물까지도 수시로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니것의 소설이 읽히고, 그의 신랄한 풍자가 감탄을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그를 모르면 작품 속에 들어있는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뭐 이런 작가가 있어 하고 작품을 접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니것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니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말이 지닌 신랄함이라든지 통쾌함 등을 만나게 되고, 단편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인물들이나 사건들에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모자이크 조각들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만들듯이 또는 퀼트 작품처럼 조각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으니... 이 [타임케이크] 또한 그렇다.


재연배우처럼 살아가는 타임퀘이크가 일어난 10년 동안의 일이나 타임퀘이크가 끝나고 반복된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때의 일들이 짤막짤막하게 실려 있어서 읽는 속도가 붙는다.


또 전에 그의 작품을 읽었다면 친숙한 구절이나 인물들을 만나게 되고, 그가 하는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곳곳에 풍자가 숨어 있으니 그것을 찾는 재미도 있고.


무엇보다 보니것 소설은 재미 있게 읽으면서도 무엇을 더 생각하게 해주는 힘이 있으니... 그가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를 생각하게 되니, 이 소설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돌려주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디지털 세계(당시는 텔레비전 시대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에 대해 물성을 지닌 책에 대한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 아닌가 한다.


'교묘한 타산이 아니라 그저 우연에 의해서, 그 무게와 질감으로, 그리고 통제에 대핸 멋진 상징적 저항으로, 책은 우리의 두 손과 두 눈을, 그 다음에는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정신의 모험 속으로 이끈다.' (240쪽)


보니것의 소설이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