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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시대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1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6월
평점 :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배경이다. 아파르트헤이트가 있던 시절.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던, 그것도 아프리카에서, 그런 시대.
철의 시대라는 제목은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들의 모습을 철에 비유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저항을 한다. 철이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강철은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에 관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물론 경찰들이 흑인 소년들을 가차없이 총으로 쏘아죽이는 장면 등에서, 흑인들의 집이 불타버리고 그들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그런 점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생활에서 흑인들이 겪고 있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이 소설에서 찾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소설의 서술자를 늙은 백인 여성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암 선고를 받고 죽어가는 여성, 지식인이었던 이 여성은 아파르트헤이트를 찬성하지 않는다. 이런 나라를 떠나 미국에 살고 있는 딸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으로 소설이 전개되는데...
소설은 이 커런이라는 여성이 암 선고를 받고 돌아오면서 집 근처에 있는 부랑자를 발견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두 손님. 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어떤 계시와 같다고 여겨 부랑자를 쫒아내지 못하고 그가 근처에서 지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가정부로 흑인 여성이 있는데, 소설에서 커런에게 플로렌스로 알려진 흑인 가정부의 이름을 커런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을 그대로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함께 지내는 가정부의 이름마저도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 이것이 바로 아파르트헤이트의 결과 아니겠는가.
서로 간에 지니고 있는 불신. 이 불신은 거리에 있다. 함께 지내도 백인과 흑인이라는 거리. 이 거리로 인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차이가 난다.
플로렌스의 아들 베키가 총에 맞아 죽은 장면. 집들이 불타는 장면에서 커런이 하는 말은 집에 가고 싶다라는 말이다. 이때 다른 흑인이 하는 말은 당신은 고작 그런 말밖에 못한다고, 흑인들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다고.
너무도 명확한 거리. 지식인으로서 아파르트헤이트가 잘못된 정책이라고 비판을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그들은 흑인들처럼 싸우지 않는다. 멀찍이 떨어져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수치심을 지닌다. 이렇게 흑인들이 핍박을 받게 한 사회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죽어가는 사람이 당시의 사회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편지로 표현이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한 늙은 백인 여성의 눈으로 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그런 사회가 끝나고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나라를 만들고 있다고 믿고 싶은데...
소설을 읽으며 차별의 한복판에 있는 존재들과 그것에서 떨어져 있는 존재들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음을, 폭력은 안 된다고, 죽음은 안 된다고 주장하는 커런에게 흑인 소년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그것이 그들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봐야 한다.
다른 선택지가 있기 위해서는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이 발간된 몇 년 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되기까지 흑인들이 겪었던 차별을 늙은 백인 여성의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지닌 지식인들... 그들이 함께 행동에 나서면 차별이 더이상 지속되지 못할텐데... 소설은 커런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현실에서는 새로운 나라가 시작되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