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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ㅣ 위픽
정보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폐교된 대학교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이 기계학습센터는 산골짜기 한가운데 있었다. 냉난방 비용 절감을 위해서인지 창문을 거의 판자로 막아놨지만 에어컨 호스가 연결된 곳만 한 뼘 정도 창문 유리가 노출되어 있었다.'(12쪽)
주인공이 살게 된 곳을 묘사한 부분이다. 돈이 없어서 자신의 두뇌를 업로드 하는 조건으로 입주하게 된 곳. 이곳은 '안에 들어가서 복도와 방 구조를 실제로 보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교도소였다. 감방에는 창문이라도 있으니까 사실 교도소가 여기보다 나은지도 모른다'(14쪽)는 표현으로 갈 데가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서 들어온 곳이다.
자신의 뇌를 업로드하는 조건으로 주거를 해결하고 돈도 어느 정도 받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결국 자신을 팔아서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들이 사는 곳은 폐쇄된 곳이다. 스스로 폐쇄했다고 하기보다는 폐쇄된 공간으로 내몰린 사람들.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신영복 선생이 어떤 글에서 한 말처럼 한 여름의 감방 안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약자들에겐 약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약자가 있다.
강한 자에게는 아무 소리도 못하면서 자기보다 약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는 강하게 구는, 그야말로 강약약강인 존재. 소설에서는 그런 이를 '또라이'라고 하는데, 이런 또라이는 특이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만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디에나 통계적으로 열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또라이가 있는 법이고 주변에 아무도 또라이가 없으면 내가 그 또라이라고 하지 않던가'(17쪽)라는 표현으로, 소설은 또라이를 등장시킨다. 어떤 또라이?
바로 자신도 같은 처지이면서 약자를 더 괴롭히는, 약자를 괴롭히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그런 또라이. 915호 사람이다.
그가 괴롭히는 사람은 이주노동자인 요가 강사다. 자신의 나라에서 엔지니어였다는 요가 강사. 하지만 이 나라에 온 그는 여기저기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사람일 뿐이다. 약자들에게도 무시당하는 그런 사람.
여기에 주인공을 또 만만하게 보는 915호. 그에게는 자신의 먹잇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또라이 짓을 한다. 하지만 약자가 언제까지 약자일 수는 없는 법.
폐쇄된 공간에서 쫓겨난 915호는 이제 그곳에 있는 약자들에게 군림할 수가 없다. 그는 그런 세계에서도 쫓겨난 사람.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강하게 굴려 했을 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응징. 그는 약자로 전락하고 피해자가 된다.
이렇게 소설은 약자들을 보여준다. 이들은 강자에게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않는다가 아니라 못한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 중에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하게 나간다. 그렇게 그는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이 가해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 그 역시 약자니까. 가해와 피해가 뒤집히는 것은 순간.
이런 사회의 모습이 바람직할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사회는 '폐교된 대학교'라는 표현처럼 사회의 구실을 못하는 사회일 뿐이다. 그런 사회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창문이 없다. 그 창문은 아주 조그마해서 많은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사회의 모습을 정보라는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다. 폐쇄된 사회에서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남을 누름으로써 자기 존재를 과시하는 사람이 있음을.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 사회에서 오래 존속하지 못함을. 오히려 서로를 도와주는 관계가 오래 감을.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임을.
비록 가해에 공모하지만 주인공과 요가 강사의 경우가 그렇다. 이들은 서로를 이해한다. 자신이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정도까지는 최선을 다해주는 요가 강사와 그런 요가 강사에게 고마워하고 그를 존중하는 주인공. 이런 관계들이 지속되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
그런 관계는 조그만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과 같은 관계다. 915호같은 사람과의 관계는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이고.
자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그 조그만 창문을 마저 가려야 하는가? 아니면 판자로 막아놓은 창문에서 판자를 떼어내야 하는가? 판자를 떼어내고 더 많은 부분을 봐야 한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지 않는 부분까지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창문'의 역할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한다. 닫힌 세계를 열린 세계로 여는 것은 결국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915호 같이 더 닫는 그런 존재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 짧지만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