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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 우리는 왜 검열이 아닌 표현의 자유로 맞서야 하는가? ㅣ Philos 시리즈 23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홍성수.유민석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10월
평점 :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저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주장을 단순하게 정리하면 '혐오표현금지법'은 제정되어어서는 안 된다이니까.
혐오표현이 좋지 않은 표현을 넘어 폭력이 되는 현실에서, 그러한 혐오표현을 금지하는 법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고, 또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한 나라도 꽤 있다.
법을 통해 국가가 직접 혐오표현은 범죄라고 명시하는 것, 이것이 혐오표현금지법인데, 이 법이 과연 혐오표현을 줄이거나 없애는데 기여를 했는가 하면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는 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죄가 있는데, 이것이 혐오표현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혐오표현을 막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법을 생각해 보자. 이 법이 약자에게, 진정으로 인격을 존중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가? 이 생각을 하면 오히려 명예훼손죄는 약자를 옭아매는 역할을 더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이라고 해서, 약자가 강자에게 당한 것을 폭로해도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걸어버린다. 그러면 돈과 시간, 권력이 없는 약자는 법망에 걸려 여러가지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 강자에 의해서 또는 고의적으로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약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역할을 한 경우가 꽤 있으니...
이렇게 명예훼손죄를 생각하면, 저자가 혐오표현금지법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도 이해가 되긴 한다. 이 혐오표현금지법이 소수자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온 경우가 있고, 또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누르기는 커녕, 그들이 지하로 들어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행동하게 만듦으로써 혐오표현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기 힘들게 하기도 했다는 것.
또한 혐오표현금지법이 있는 나라에서 극단적인 정당이 계속 활동하고 있으며, 그들에 대한 지지도가 만만치 않음도, 혐오표현 금지법이 혐오표현을 막는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서 혐오표현금지법을 반대하는 주요 논거 중의 하나다.
여기에 혐오표현금지법이 없어도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한데도 혐오표현금지법을 제정한다면 그것은 '자유, 평등 및 민주주의의 보편 원칙을 훼손한다'(57쪽)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집단 간 갈등을 줄이거나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법전쟁lawfare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화해적인 접근'(235쪽)라고 하고 있다. 즉 더 많은 대화를 통해서, 대항 표현을 통해서 혐오표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개인과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표현의 잠재적 힘보다 더 나쁜 것은 혐오표현금지법을 시행함으로써 똑같이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정부의 잠재적 힘이다. 예상대로, 이 탄력적 힘은 반대 의견, 대중적이지 않은 발화자, 그리고 권력이 없는 집단을 침묵시키는 데 사용될 것이다'(45쪽)는 주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법도 그 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혐오표현금지법 역시 그러한 전철을 밟고 있거나 밟을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저자는 차별금지법이 먼저 제정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지 않는다.
아직 차별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인데... 이 법이 먼저 제정이 되고 시행이 된 다음에, 현재 있는 법으로도 혐오표현을 처벌할 수 있으면 강력하게 처벌하되, 대항 표현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것이 토론으로 나아가 서로의 생각을 수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분명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는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한다. 또한 처벌받아야 할 혐오표현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한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저자가 혐오표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지,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표현을 그냥 놔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역시 혐오표현이 일어나지 않도록 환경과 또한 대항 표현을 더 활발하고 강하게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것을 법의 영역으로 보내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말을 곱씹어 보자.
'폭력적 차별적 행동은 즉시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차별적, 혐오적 생각을 전파하는 표현은 강력하게 논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혐오적이거나 차별적이라고 여기는 생각을 처벌하는 것은 위에서 소개했던 표현의 자유 근본 원칙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집단 내의 불신와 차별을 줄이는 게 아니라 증가시킬 수도 있다.' (35-36쪽)
그래서 저자는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두꺼운 피부를 발달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얇은 피부를 발달시켜야 한다'(268쪽)고 한다.
즉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논박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민감한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혐오표현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은 점점 더 없어질 테고...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모든 것을 법의 영역으로 넘기면 해결은 더욱 멀어진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넘기고 방관하게 되기 때문인데, 그러면 대항 표현은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혐오표현금지법에 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법 이전에 사회가 그러한 표현을 할 수 없도록 대항 표현을 비롯한 자유로운 토론 문화가 만들어지게 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했다.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이것은. 하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차별을 금지하자는데 반대하는 사람도 있나 싶지만, 이 법이 왜 제정이 안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의 생각이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