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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생각 사는 핑계 ㅣ 매일과 영원 11
이소호 지음 / 민음사 / 2024년 10월
평점 :
이소호 시인. 내게는 낯선 시인이다. 아니 들어본 시인이다. 예전에 쓴 글을 읽다가 이소호 시인의 시를 인용한 글을 발견했다. 햐, 내가 이 시인의 시를 읽었구나.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시집을 산 기억이 없다.
찾아본다. 시집이 없다. 역시 사지 않았군. 그렇다면 어디서 읽었을까? 분명 읽었기에 시를 인용했을 텐데... 그 시에 섬뜩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우리 사회가 지닌 모습을 이리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하고 감탄한 적이 있는데...
검색해본다. '이소호'라는 이름을 치고, 어떤 책들을 냈는지 찾아본다. 그러다 아, 여기서 이소호 시인을 만났구나, 발견한다.
[2021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수상후보작에 이소호 시인 이름이 있다. 여기였군. 다시 펼쳐본다. 예전에 읽었을 때보다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졌다. 왜냐? 바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쓰는 생각 사는 핑계]
이소호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자신의 생각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으니, 시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면 그 시가 더 친숙하게 여겨지는 것은 사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서 다시 읽은 이소호 시인의 시 몇 편은 내게 더 잘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은 시집을 읽고, 그 다음에 시인의 에세이를 읽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다. 뭐, 바뀌면 어떠랴, 내 맘에 드는 글을 읽는 즐거움을 주었는데... 시집을 읽기 전에 시 몇 편은 읽지 않았는가.
이 에세이 읽기는 즐겁다. 시인이 왜 시를 쓰냐고? 쉽게 말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다. 얼마나 진솔한가. 뮤즈가 영감을 줘서 나는 그냥 받아쓰기만 했을 뿐이라고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서 더 좋다고나 할까.
시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먹고, 자고, 싸는 사람임을, 그 역시 소비하는 인간임을 알게 되니, 소비하는 인간, 현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느낀 점을 시로 썼다는 점을 알게 되니 시인이 한결 친숙하게 느껴진다.
나만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 좋다. 취미가 쇼핑인 시인이라니...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제목에 쓰인 두 단어 '쓰는, 사는'이 두 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우선 '쓰는'이란 말은 시인이니까 '글(시나 소설, 에세이)을 쓰는'이라는 뜻과 먹고 살아야 하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돈을 쓰는'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고보니 둘 다 '쓰는' 행위였구나 하는 생각. 그럼 돈을 쓰기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겠구나, 시인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분야를 직업으로 가진 생활인으로 봐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으니...
시인 역시 이 글에서 자신의 책을 팔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단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다. 살아야 하니까. 그래서 출판사가 아닌 자신이 직접 여러 상품(굿즈라고 하는데)을 만들어 함께 주기도 한다고 한다. 쓰기 위해 쓰는 모습을 이 책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이 어떻단 말인가.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런 모습 속에서 좋은 시도 나오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사는'이라는 말도 '삶을 사는'이라는 뜻과 '물건을 사는'이라는 뜻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핑계라는 말을 의미라는 말로 바꾸면 삶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더욱 알찬 삶을 살 수 있다고, 또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의미를 잃지 않으면 삶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의미 치료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의미는 삶에서 중요하다. 그와 더불어 물건을 사더라도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욱 가치가 있겠지.
이 책을 보면 정말 많은 물건을 사는데, 이 물건들을 사는데 나름의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이 바로 핑계라고 할 수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삶에 무언가를 주기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정말 다양한 물건을 사는 모습이 이 책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그런 글을 읽으면서 과소비라는 생각,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마도 시인의 핑계가 내게 통했나 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인의 시집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시인이 이 에세이를 쓴 목적이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사고 싶다인데, 샀다가 되는 순간, 시인의 바람에 부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글이 묻혀 잊히기를 바라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계속 읽히길, 시집도 물건처럼 그 사람 곁에 머물길 바라니까.
곁에 두고 어느 순간이라도 꺼내 볼 수 있는, 때로는 잊고 있다가도 아, 이 시집이 있었지 하면서 빼어 읽을 수 있는 물질로서의 시집을 사람들이 지니길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시인의 기준을 한번 적용해 볼까.
좀 시간을 두고 꿈에 시집이 나오면 사는 걸로, 아니면 계속 시집 제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으면 사는 걸로... 하하.
즐겁게 읽었다. 그러면서 시인이 자신에게 시란 무엇인지를 말한 이 글은 기억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기에 옮겨 적는다.
'나에게 시란, 인생에서 시선을 고이 두고 오랫동안 툭 잘라 기억하고 싶은 한 장면을 뜻한다. 그것이 비극일지라도 나는 필요하다면 잘랐고, 세밀하게 관찰했고, 그 시선을 단 한 차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시는 모났다. 불편했다. 그리고 가끔은 아름다웠으며, 처연했다.'(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