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정아은 지음 / 사이드웨이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쓰고 싶지 않다. 그에 대한 책도 읽고 싶지 않다. 그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 생각하는 것 자체도 짜증이 난다. 그렇다고 그에 대해서 모르고 지나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고, 정치도 퇴행시켰기 때문이다.


알아야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왜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한 일을 성찰하지 못했을까? 그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였다면 그에 대한 반감이 지금보다는 조금 줄었을 것이다. 그를 좋아할 순 없겠고, 용서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용서를 구하지 않고 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도 그가 지은 죗값을 치르게 단죄를 했으면 어땠을까? 재판에서 무기징역까지 선고해 놓고 사면해 버려, 자연인으로 살다가 죽게 만들었으니...


이 전례를 생각하는 또 한 사람이 있을 테니... 사면,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적어도 사면을 할 수 없는 범죄가 있다는 사회적 합의는 있어야 한다. 어떤 범죄를 사면하면 되지 않을까? 바로 전두환 같은 내란죄를 저지른 사람들과 같은 경우는 사면하면 안 되지 않을까.


전두환은 감옥에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면되었다. 마찬가지로 감옥에 간 전직 대통령들 역시 그리 오래 감옥 생활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전두환의 사례가 지속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일 것이다.


지금 또 한 사람이 있다.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국민들 모두가 그의 죄를 보았으니, 전두환에 준하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물론 전두환과는 달리 인명을 살상하지도, 고문을 하지도 않았다지만, 육체적인 고문은 없었다 해도 정신적인 고문, 그리고 국민의 자긍심에 상처를 낸 행위,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었던 비상계엄 선포 등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 하는 행위가 이상하게 전두환을 연상시킨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어. 당신들이 나를 음해하는 거야. 난 억울해. 이것이 전두환이 죽을 때까지 한 말 아니던가. 그는 의식적으로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그의 내면, 무의식 속에서는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이 있었을 거라 한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고 왜곡하는 것은 그의 자아가 어린 시절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한 일도 부정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그가 제대로 성숙할 과정을 거치지 못했음을, 자신의 자아 속에 갇혀 남을 볼 수 없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이런 그를 우리는 용서해야 할까? 그가 성숙하지 못했다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다. 성숙하지 못한 것은 그의 자아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사회가 인정하게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책임을 끝까지 묻지 못했기에 그는 마지막까지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죽을 때까지도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이렇게 그에게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했기에 우리는 비슷한 인물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때 한 실수를 반복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또다시 전두환을 사면했던 것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전두환이 죽을 때까지 변명으로, 자신은 정당하고 억울하다고 강변했듯이, 누군가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이런 인간들을 또 만날 가능성을 지니게 될 것이다.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것은 전두환 한 명이면 된다. 그를 자연인으로 살다 죽게 한 후과를 우리는 너무도 크게 겪고 있지 않은가. 이 책은 왜 그가 사과를 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았는지, 그의 말과 행위를 통해서 내면을 추측하고 있다.


성장하지 못한 자아, 자기중심적이고 극도의 행동주의적 성격 등등. 그래서 저자는 '전두환의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그 특별한 가벼움이라고'(101쪽)한다. 이 특별한 가벼움을 조금 더 설명하면 '1)일을 저지르고, 2)후과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기. 이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거나, 부끄러워하거나,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166-167쪽)는 자세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제 이런 사람은 이제 전두환 하나면 된다. 더이상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묻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저자는 '공동체 구성원이 다 같이 지켜가겠다고 합의해 일정한 '선'을 만들고 그 선을 지켜나가는 것은 '근대화'에 포함된 여러 요소 중 가장 정신적이고 고급스러운 요소'(356쪽)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비상계엄과 같은 일은 용납되어선 안 된다는 사회적 '선'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인물이 저지른 행동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 그것이 지금의 우리 사회니, 전두환을 통해서 적어도 이 선 하나는 합의가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럼에도 전두환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일을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 이것이 이 책을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된다.


'뉘우치지 않고 간 거악(巨惡)의 존재 때문에 우리 사회는 상황을 있었던 그대로 들여다보고 정확하고도 면밀하게 각각에 대한 책임을 묻는 법,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 과거를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나갈 토대로 삼을 수 있게끔 방향을 설정하는 법, 이상과 현실 간의 간극을 파악하고 현실에 적합한 선에서 이상을 지혜롭게 실현하는 법, 누군가를 '절대 악'으로 설정해 희생양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법과 같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로 가기 위해 반드시 보유해야 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313-314쪽)


자, 우리는 또다시 이러한 갈림길에 서 있다. 또 하나의 거악을 그대로 두는 두 번째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설정한 '선'을 넘어서는 인간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전두환에게 했던 일의 반복일 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전두환이라는 이름을 다시는 거론하고 싶지 않지만,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역사를 반복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