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뤼미에르 피플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12월
평점 :
솔직히 제목에 있는 뤼미에르라는 말을 보고, 영화를 떠올렸다. 영화적 인간인가? 하는 생각.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 역사에서 맨 처음에 나오는 사람들이니... 빛을 떠올리기 보다 영화를 먼저 떠올렸는데...
그런데 영화라고 하면 옴니버스식 영화가 되어야 하나? 연작소설이니, 각 등장인물들이 서로 관계를 맺기보다는 독립적으로 등장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무언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까?
제목에서 답을 얻어야 할 것 같은데... 뤼미에르를 빛이라고 하면 빛 사람들이다. 빛의 사람인지, 빛과 사람인지, 빛에 비춰지는 사람인지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사실 읽다보면 제목을 쉽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뤼미에르 빌딩이기 때문이고, 이 뤼미에르 빌딩 8층에 사는 사람들(? 사람이 아닌 쥐나 고양이가 주인공이 된 경우도 있는데, 이들을 그냥 동물의 의인화라고 생각한다면)의 이야기니, 뤼미에르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하면 된다.
여러가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제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의 인물들이 뤼미에르 빌딩 8층에 살고 있으니 뤼미에르 피플이라고 하면 된다.
그럼에도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다. 왜 뤼미에르인가? 왜 빛인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 결코 빛나는 삶을 살지 않는다. 빛나는 삶은커녕 중간보다도 못한 삶을 산다. 그런데 사는 곳 이름은 빛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조가 된다.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빛의 물결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살아가는 길거리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하겠지만, 이들 역시 대도시의 삶에서 소외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다.
이들을 통해서 작가는 대도시 삶의 이면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빛을 보지만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삶들이 있다고. 그 삶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즉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빛 속에서 어둠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그 눈을 지니고 그들에게 한발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고.
이 소설집에서 그래도 가장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소설이 마지막에 실린 '810호 I 되살아나는 섬'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하는 말, 어쩌면 이 소설 전체를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른다.
"...저는 세상 모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절대선이나 구원자 같은 게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그보다는 체계는 없더라도 사람 사이의 인정이나 연민 같은 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 (328쪽)
이것이다. 세계적인 종교보다도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 거창한 이념보다는 실제로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를 구원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종교가 빛이라면 그 빛에 가려져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너무도 강렬한 빛이기에 빛 뒤에 있는 것이 보이지 않게 되고, 오로지 빛만 향해 나아가게 할 수도 있음을...
하여 작가는 이 빛의 뒤에 있는 존재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어둠 속의 삶에 대해 연민을 지니게 한다.
가출 청소년, 혼전 임신, 일중독자, 미래를 잃어가는 청소년들, 빛의 굴레에 빠진 신용불량자, 돈으로 만족을 사는 사람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문제 등등이 각 거주자들을 통해 보여지고 있는데... 이 중에는 장강명의 다른 소설에서 더 발전되는 것들도 있다.
그 소설은 '806호 I 삶어녀 죽이기'인데, 이 소설은 나중에 [댓글부대]로 더욱 범위가 확장된다. 인터넷 댓글, 조작, 그리고 매크로를 이용한 여론 조작까지, 그 전조를 이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에 실린 810호의 이야기는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현수동이 등장하니 이 작가의 [아무튼, 현수동]과 관련이 있을 듯하고, 이런 모든 것들, 소설이 허구라고 하지만 804호 이야기에서 나오는 작가와 작품을 통해서 다른 작품들을 연결지을 수도 있다.
다양한 기법이 이 소설집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러한 기법은 채무자와 채권자(돈으로 채권을 샀겠지만)를 둘로 나누어 한 쪽에 나란히 병치한 '805호 I 돈다발로 때려라'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다. 물론 804호의 이야기에서도 작가와 기자가 인터뷰한 내용이 중간 중간에 박스 형식으로 나오고 있어서 일반적인 소설과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고... 이 소설들을 읽다보면 황지우 시의 기법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양한 기법과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현대 사회의 기술발전에 따른 문제점 등을 연작소설을 통해 담아내고 있으니 빛을 받아 반짝이는 삶들도 있지만 빛에 의해 가려진 삶들도 있음을 이 소설집이 잘 보여주고 있다.